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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차 한 잔 마셨을 뿐인데

기자명 최원형

커피 한 잔 마시고 버린 컵에 나무 한 그루 잘려나가

미세먼지로 온통 희뿌옇던 날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전망대에 올랐다. 약속 장소를 굳이 그곳으로 잡은 건 서울시내 풍경이 어느 정도나 심각한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시청에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북악산이 대강의 실루엣만 눈에 들어왔다. 한낮인데도 해질 무렵이라 해도 믿을 만큼 어둑했다. 전망대 카페를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커피며 음료를 일회용 컵에 담아 홀짝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심각한 대기를 걱정하며 이야기 나누는 이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차 한 잔 마셨을 뿐인데 혹시 그 행위가 미세먼지와 관련이 있진 않을까?

일회용 컵 재활용 비율은 고작 1%
보증금제 폐지로 소비량 대폭 증가
태우면 미세먼지 나와 건강해치고
땅에 묻어도 썩지 않아 환경 오염

길어야 30분 쓰이고, 사라지는데 몇 백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물건이 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쓰고도 대를 이어 쓸 수 있는 물건이 또 하나 있다. 이 물건은 사라질 시간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조심히 다루면 몇 백 년 아니 몇 천 년도 갈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을 보면 이 사실은 확실히 증명된다. 컵이란 물건을 두고 꺼낸 얘기다. 그렇다면 어떤 물건이 효용성이 높을까?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물건을 두고 고작 30분 쓰고 버릴 물건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조건을 좀 더 붙여보자. 후자는 매번 씻어서 사용해야 한다. 전자는 버리면 끝이다. 여기서 편리함이라는 변수가 힘을 발휘한다. 설거지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생략되는 대가로 일회용 컵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번거롭게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어디서나 필요할 때 쓰고 버리면 끝이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일회용 컵은 매력적이기 짝이 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생각을 좀 더 이어가 보자. 쓰레기통에 버리면 모든 건 정말 끝일까? 방금 전까지 음료를 마시던 컵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순간 쓰레기가 된다. 우리는 일회용 컵이 재활용이 될 거라 믿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일회용 컵의 재활용 비율은 고작해야 1% 정도다. 플라스틱 일회용 컵은 컵마다 재질이 조금씩 다르다. 재활용하려면 무엇보다 재료를 선별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종이컵의 경우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안쪽에 폴리에틸렌 코팅이 돼 있어서 그것을 제거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코팅을 벗길 때 차염소산나트륨(NaClO)이라는 화학물질을 쓴다. 코팅된 종이컵 1t에 들어가는 차염소산나트륨이 대략 50㎏이다. 재활용의 길은 멀고도 복잡하다. 만약 컵이 쓰레기통 혹은 길가에 버려질 경우 재활용이 될 확률은 더욱 낮아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재활용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태우거나 땅에 묻는다. 태우면 내 눈앞에서는 사라지지만 대기 중 어딘가에 머무른다. 일회용 컵을 태워 나온 성분 가운데는 미세먼지가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게 누군가의 호흡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끔찍한 상상이지만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흐를 수도 있다. 땅에 묻으면 어떻게 될까?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몇 백 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쏟아져 나오는 모든 쓰레기들을 감당할 만큼 지구에 여력이 없다는 데 있다. 당연한 소리 아닌가, 지구라는 공간은 한정돼 있으니.

지난 연말 중국은 외부에서 들여오던 폐기물들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있고 미국, 영국 등은 다급해졌다. 그동안 자국에서 나온 폐기물들을 중국으로 넘겼기 때문이다. 쓰레기 제로 운동을 펼치며 미국 내에서도 아주 모범적이던 캘리포니아 주마저 매립지로 향하는 폐기물이 2백만 톤을 넘어섰다 한다. 오레곤 주의 경우는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을 매립하기에 이르렀다. 매립은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비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이 감당해야 한다. 지난 1월 영국 메이 총리는 25년에 걸친 친환경 청사진을 발표했다. 일회용 컵에 라떼 부담금이라는 세금을 매기는 등 쓰레기 발생량을 대대적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런던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2월부터 3개월 동안 20개 매장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할 경우 5펜스(약 70원)의 추가 비용을 물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정은 어떨까? 카페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부과하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2008년 금지된 이래 일회용 컵 소비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종이컵 만드는 데 사용되는 종이는 추운지방에서 자라는 침엽수에서 뽑은 비전 펄프다. 펄프 가운데 최고급이며 우리나라는 모두 수입하고 있다. 커피 한 잔 마시고는 멀쩡한 컵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건 허무하게 나무 한그루가 잘려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 부활도 절실하지만 무엇보다 소비 뒤에 남겨질 쓰레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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