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사수행 박수지-상

기자명 법보신문

▲ 46, 인향지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지금 내가 걷는 길은 경험과 인연에 의한 결정의 산물임을 깊이 깨닫습니다.”

수십년 사경해 온 어머니
곁에서 어깨너머 지켜보다
‘반야심경’부터 매일 사경
자연스레 딸도 법회 참여

수십 년이었다. 매일 가족을 위해 사경기도를 하시는 분이었다. 힘들고 바쁜 날도 거르지 않았다.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법 없이 단 하루도 빠짐없었다. 꾸준히 기도를 이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쉽게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한없이 대단해 보였다. 내 곁에 있던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언제였을까. 어머니가 ‘반야심경’ 사경을 권하셨다. 어깨너머로 본 세월이 얼마였던가. 호기롭게 시도했다. 쓰다 말기를 반복하던 끝에 결국 흐지부지 그만두고 말았다. 그때 사경을 중단해버린 상황이 기억에 깊게 각인됐는지 모르겠다. 계속 숙제처럼 남아 있었던 것 같다.

2015년 9월 어느 날, 직장 회의시간이었다. 올해가 가기 전 이루고 싶은 바람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뜬금없이 사경기도를 시작해 보겠노라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했다. 평소에 차곡차곡 생각해 온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짧은 시간에 그 생각이 스쳤는지 내가 생각해도 신기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선언이었다. 툭 터져 나온 발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직장 동료언니가 시절인연을 맺도록 이끌어줬다. 부산 홍법사 기도반을 소개해 줬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기억 저편에 아른거리는 어머니의 사경하던 모습이 구체화되려는 순간이었다. 혼자 다시 시작하기에는 다소 막막하던 참이었다.

그날로 홍법사의 기도밴드에 가입했다. ‘반야심경’ 사경을 해서 매일 밴드에 올리기 시작했다. 밴드에 그날의 기도를 올리면 뿌듯했다. 격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면 그 댓글을 읽는 일도 즐거움이었고 설렘이었다. 기도를 다시 시작하면서 감사함이 넘쳐흐르는 벅찬 순간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천수경’이 세로로 적혀 있는 불경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천수경’을 세로로 독경하는 법을 몰라 무턱대고 가로로 읽으며 기도를 한 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만큼 나의 신행은 어머니 곁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일 뿐 사실상 초보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경 밴드에 가입하고 도반들과 함께 불교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다 보니 어느새 기도를 시작한 지 900일을 향해 가게 되었다. 어쩌면 사경을 하지 않아도 그냥 흘러갔을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을 오롯하게 기도로 채워 갈 수 있어 감사하다.

또 한 가지 감사라는 표현을 쏟아내고 싶은 인연이 이어졌다. 기도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홍법사에 어린이법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마침 딸아이도 함께 절에 다니며 합창과 플롯을 배우게 되었다. 딸은 절에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게 되었다. 이후 우리 가족은 일요일 하루를 온전히 절에서 지낼 수 있었다.

변화는 생각지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 동안거 수행’에 딸아이가 참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기간을 정해놓고 수행을 꾸준히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수행을 시작한 이후 매년 여름과 겨울마다 우리 가족은 사경, 사불, 108배 기도를 함께 할 수 있었다.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의 108배는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 함께 땀 흘렸던 시간들, 함께 사불하며 이야기 나누던 시간들은 무척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가족들 추억이 쌓이는 만큼 불연도 깊어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에서 감사수행을 권유받았다. 감사수행은 그동안 해오던 수행과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야 했다. 자신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게 될 수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감사수행에는 선뜻 마음을 내지는 못했다. 머뭇머뭇 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