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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스파르타쿠스의 평등

“동포 여러분 분연히 일어나 억압의 쇠사슬 끊어버립시다”

▲ 그림=근호

현대인이 복싱과 이종격투기를 즐기듯이 고대 로마인들은 검투를 즐겼다. 검투를 위해 로마인들은 싸움에 능한 노예들을 검투사(gladiato) 양성소에서 훈련시킨 다음 원형 경기장에서 겨루도록 했다.

노예 검투사, 로마 항거 시작
6000명, 십자가 못박혀 죽어
투쟁역사서 자유인 모습 발견

부처님, 승단 안서 평등 구현
현대불교는 과연 진보적인가
과거 성찰과 고민 필요한 때

삶과 죽음이 극적으로 갈리는 검투사의 운명은 문학과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1950년에 하워드 패스트가 소설 ‘스파르타쿠스’를 펴냈는데, 이 작품은 1960년에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하고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영화로 발표되어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리들리 스콧이 러셀 크로가 주연한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제작되어 크게 흥행하였으며, 2009∼2010년에는 미국에서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유료 케이블 채널인 ‘스타즈’에서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다.

 스파르타쿠스(Spartacus)는 로마 검투사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유일한 인물이다. 지금의 불가리아가 있는 발칸 반도의 트리키아 민족 출신인 그는 로마군을 따라 복무한 적이 있다. 로마 군단은 동맹국 출신으로 기병을 보강하기도 했는데, 보조 기병군 중에 트리키아 출신 기병은 더욱 용맹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 보조군에서 탈영했다가 사로잡혀 노예 검투사로 팔렸다. 검투 경기에서 지는 검투사의 목숨은 관중에 의해 결정되었다. 졌더라도 잘 싸웠다고 생각되는 경우 목숨을 부지할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매번 그런 특전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매번 이기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기원전 71년, 자신의 삶과 죽음이 타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더 견딜 수 없었던 그는 분연히 일어섰다. 그는 동료 검투사 74명과 함께 검투사 감옥에서 탈출하여 로마에 항거하기 시작했다. 노예 검투사들의 호응이 잇따라 그의 병력은 최대 6만 명에 이르렀다.

당황한 로마는 두 집정관을 보내 스파르타쿠스의 군대를 공격했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의 군대는 손쉽게 그들을 물리쳤다. 남부 이탈리아를 장악한 스파르타쿠스 군은 알프스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진군했다. 기원전 71년, 그들은 크라수스의 지휘를 받는 로마군에게 대패했고, 노예 6000명이 아피아 가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형을 받고 죽었다. 스파르타쿠스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스파르타쿠스 군의 병사들은 로마군에게 사로잡히자 저마다 자신이 스파르타쿠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는 스파르타쿠스가 부하들로부터 매우 큰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의 사람됨은 그가 행한 연설에도 짙게 배어 있다.

“여러분은 나를 대장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투사는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 나는 자주 놀러 가곤 하던 시냇물처럼 평온하게 살았습니다. 포도나무를 베기도 하고 양치는 목동으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양들을 나무 그늘에 모아놓고 피리를 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로마의 칼끝이 우리가 살던 산골 마을의 조용한 평화를 깨뜨렸습니다. 나를 길러주신 어머니의 가슴은 로마 병사의 말발굽에 잔인하게 짓밟히고, 아버지는 피투성이 시체가 되어 길바닥에 내버려 졌습니다.

나는 오늘 결투에서 상대방을 죽였습니다. 상대의 투구의 끈을 끊고 얼굴을 보니 그는 소년 시절의 내 친구였습니다. 나를 알아본 친구는 미소를 띠며 죽어갔습니다. 그 얼굴은, 나와 그가 어렸을 때 높은 언덕을 서로 밀고 끌며 올라가 포도를 따던 때의 그 얼굴이었습니다. 

나는 입회인에게 친구의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피가 물든 모래 위에서 내가 그렇게 간청했을 때 관중들은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비웃는 소리를 퍼부었고, 입회인은 “뭐, 장례식? 로마인 말고 인간은 없어!”라고 말하며 나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리하여 불행한 내 친구의 영혼은 지금 이 세상에 떠돌면서 선조들이 잠들어 있는 저 세상을 그리고 있을 것입니다. 

오, 로마여! 나를 투사로 길러준 오, 로마여! 피리소리 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소년으로 하여금 강철 같은 근육과 쇠뿔 같은 공격심을 갖게 한 것은 로마입니다! 경기장에서 악마처럼 상대와 싸우고, 태연스럽게 누미디아 사자와 씨름하는 것을 가르친 것은 로마인 것입니다!

오늘처럼 내일이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들어보십시오, 피에 굶주린 사자들의 저 포효 소리를. 우리는 머지않아 사흘 동안 먹지 못한 굶주린 저 사자들의 밥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짐승이라면 잠잠히 살찐 암소가 되어 백정의 칼을 받으십시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인간이라면, 나를 따라 여러분의 할아버지들이 사모피레 산협에서 적을 막았듯이 적과 싸웁시다.

여러분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그리스인으로서의 피는 말라버렸습니까? 오, 동포여! 그리스인들이여! 이왕에 싸울 거라면 자신을 위해 싸웁시다! 이왕에 죽일 거라면 압제자들을 죽입시다! 이왕에 죽을 거라면 명예롭게 싸우다 죽읍시다! 죽음으로 일어나 쇠사슬을 풀어버립시다!”

인류의 문명사 6000년은 평등권, 자유권, 행복 추구권 등 기본권을 확립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스파르타쿠스는 강인한 자유인의 모습으로 우리를 격동시킨다.

스파르타쿠스보다 500여년 전, 부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의 인도는 심한 불평등 사회였다. 부처님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스파르타쿠스처럼 피를 뿌리며 투쟁하시지는 않았다. 그 대신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힘이 미치는 영역, 즉 승단 안에서 평등을 구현하셨다.

불교 승단에 출가한 자는 출신 계급과 상관없이 모두가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여성의 출가도 허용되었다. 이슬람교·힌두교·가톨릭이 아직까지도 여성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개신교가 최근에야 여성 목사를 받아들인 점에 비추어 이는 대표적인 종교 가운데 가장 앞서 평등을 실천한 사례이다.

부처님이 구현하신 평등은 21세기에 속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진보적이었다. 우리는 묻는다. “현재 우리 불교 교단은 다른 종교와 세속 사회에 비해 과연 진보적인가?”라고. 이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의 절절한 부르짖음을 만나며 우리는 불교에서 진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된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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