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8.2.22 목 22:20
> 연재 | 김형중의 내가 사랑한 불교시
71. 조오현의 ‘고목 소리 들을려면’세상 온갖 시련과 풍파 겪으면서도
최후까지 견뎌내고 우뚝 서야 고목
김형중  |  ililsihoil1026@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2.06  14:53:2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 소리 들을려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그 물론 굽은 등걸에
장독(杖毒)들도 남아 있어야

대법원장 퇴임사 인용했지만
혼자 꽃길 걸은 이 원로 못돼
지장보살이 지옥을 택했듯이
중생 품에 안아야 진짜 도인


오현(1932~현재) 스님의 ‘고목 소리 들을려면’은 2017년 9월2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퇴임사에서 인용돼 유명해진 선시조이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시인은 ‘고목 소리 들을려면’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 전문- 오래 되었다고 다 고목이 아닌 모양입니다. 고목에는 이파리도 몇 개 없고 줄기도 볼품없지마는 모진 풍상을 견뎌온 흔적에서 숙연한 연륜의 향기가 풍겨옵니다. 저는 제가 그저 오래된 법관에 그치지 않고 온 몸과 마음이 상처에 싸여있는 고목과 같은 법관이 될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과 행복으로 여기겠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3장 ‘그 물론 굽은 등걸에/ 매 맞은 자국들도(杖毒) 남아 있어야’에 방점(傍點)을 찍었다. 어렵고 가난한 시대와 세상에서 자신만 부귀와 영광을 누리면서 살았다면, 그 사람은 국가의 원로로서 국민의 존경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혼자 꽃길만 걸은 사람은 인생의 원로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고목이 되려면 온갖 시련과 풍파를 겪으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견디며 마침내 살아남아서 우뚝 서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한다.

어미가 전쟁 중에 곧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자결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굶는 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참기 힘든 치욕을 참아야 한다. 존경받는 나라의 원로가 되기 위해서는 온갖 유혹과 수난을 잘 극복해야 가능하다. 나라의 원로가 아니더라도, 뼈대 있는 가정이 아니더라도, 한 가정을 지켜오기 위해서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말 못하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또 그것을 견뎌낸 것이다.

‘고목 소리 들을려면’은 ‘일색변’ 연작시 8수 가운데 ‘일색변·2’의 시 제목을 다르게 붙인 것이다. 일색변(一色邊)은 현상계의 상대적인 세계 즉, 유무(有無), 대소(大小), 선악(善惡), 시비(是非), 미추(美醜), 생사(生死) 등의 세계를 초월한 하나의 세계 즉, 일색(一色) 오도(悟道)의 경계를 뜻한다. 대립적인 시비분별이 끊어진 대붕일색(大鵬一色)의 깨달음의 세계이다. 구도자가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중생을 함께 부둥켜 안아야 한다. 속이 터지고 손톱발톱 눈썹까지 다 빠져서 문둥이가 되어야 큰스님, 도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극락이 아닌 지옥을 택했다.

일본의 고승 백은(白隱)선사는 사하촌의 처녀가 낳은 아이를 절에서 대신 키우면서 억울한 모함과 험한 치욕을 감수하였다. 불자 처녀의 고통을 대신하고 감당한 진실이 밝혀져서 더 큰 도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 정도는 돼야 도인 소리 들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3월2일이 무술년 정월대보름 동안거 해제일이다. 지금 전국의 산사 선방에서 참선 수행승이 불철주야 조주선사의 무자화두를 들고 생사를 걸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용맹정진을 하고 있다. 선시는 선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경지를 읊은 오도시이다. 깨달음의 세계는 언어문자를 떠난 불립문자의 세계이지만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은 중생을 위하여 말로서 말이 없는 경계를 나타냈다. 이것이 오도송, 즉 선시이다.

동안거 해제일을 맞아 ‘고목 소리 들을려면’의 시조 선시를 화두로 삼아 내 자신의 삶을 회고해 보자.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27호 / 2018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라인
라인
포토뉴스
라인
가장 많이 본 기사
여백
실시간뉴스
라인
여백
법보신문은찾아오시는길구독·법보시광고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3157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구독신청 : 02-725-7010  |  광고문의 : 02-725-7013  |  편집국 : 02-725-7014
기사문의 : 070-4707-4969  |   사업자 등록번호 : 101-86-19053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07229  |  등록일자 : 2005년 11월 29일
제호 : 법보신문  |  발행인 : 김형규  |  편집인 : 이재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형규
Copyright © 2013 법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