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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

기자명 일선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8.02.12 09:27
  • 수정 2018.02.12 09:29
  • 댓글 0

올겨울은 유난히도 추워서 천년고찰의 약수가 꽁꽁 얼어붙어 흐름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도량에는 풀 한 포기도 남김없이 얼어 죽었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처럼 춥다는 감각이 극에 달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여 일체 사량분별과 불법지견마저 회광반조하여 온전히 없애버립니다.

입춘은 봄기운 일어나는 날
도량 눈 쓸며 ‘立春大吉’ 써
동장군 물러날 기미 없지만
화사한 봄은 점차 다가올 것

아침 일찍 우리절의 선차회장님이 드디어 할머니가 되었다는 반가운 문자를 받았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해산할 때 신발을 거꾸로 돌려놓고 방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온전히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새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찾아오는 기쁨을 맞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간 얼마나 가슴 졸이며 손자의 순산을 기다렸는지 위로하고 비로소 온 집안의 경사가 되었으니 이제 봄입니다. 입춘대길 하시라는 덕담을 전해주었습니다.

오늘은 봄기운이 일어서니 큰 행복이라는 입춘이지만 밤사이 눈이 내리고 매우 추운 날입니다. 신도들은 입춘 불공을 마치고 떡국 공양을 나누면서 저마다 새해는 남북이 평화롭고 다가오는 동계올림픽 성공을 비는 덕담을 나눕니다. 그리고 가내가 평화롭고 삼재팔난이 없기를 바라며 모두가 행복하라고 따뜻한 마음을 건넵니다.

성도절은 인간 싯다르타 태자가 온갖 고행과 최후에 깨닫겠다는 일념마저 포기하고 온전히 죽었을 때 새벽별과 인연이 되어 깨달은 날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닫고 나서 참으로 기이하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여래와 더불어 차별 없는 지혜덕상을 갖추고 있구나”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겨울 하늘에 천둥소리와 같은 인류구원의 봄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다만 중생들이 삼독의 업장에 가려져 있어 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중생들이 기나긴 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 원인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부처님 성도의 소식을 접하지 못했더라면 기나긴 인생고를 어떻게 감당할 수가 있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합니다.

지금 제방선원에서는 성도재일 용맹정진을 마치고 해제를 기다리고, 또 한편에서는 무문관 수행과 3년 기한 장좌불와 용맹정진을 하고 있는 것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본래 부처라는 깨달음은 마치 한 덩어리 다이아몬드 원석을 길가다가 주운 것과 같아서 참으로 발심의 원동력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일체 망념을 화두 의정으로 회광반조하면 일체 업식이 눈 녹듯이 스러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깨닫고 나서 비로소 참다운 수행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마치 얼음 연못이 본래 물인 줄 깨달았지만 녹여서 일상사에 온전히 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비록 어른과 조금도 다름없이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지만 어른과 같은 힘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 일선 스님
입춘이 지났습니다. 동장군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만산 가득 꽃피고 새우는 온전한 봄은 점차로 오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학인이 경청선사에게 물었습니다. “새해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경청선사가 대답했습니다. “오늘이 정월 초하루이니 만물마다 모든 것이 새롭다.”

입춘 날 뒷산 녹차 밭의 푸름이 하늘보다 뛰어납니다.

일선 스님 장흥 보림사 주지 sunmongdoll@naver.com

 

[1428호 / 2018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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