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기영의 ‘지눌의 십종염불’ ① - 1974년 ‘불교문화’
4. 이기영의 ‘지눌의 십종염불’ ① - 1974년 ‘불교문화’
  • 법보신문
  • 승인 2018.02.12 10: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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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절한다고 극락가지 않는다

보조국사 지눌은 매우 어려운 시기에 살았다. 정치·군사적으로 나라는 혼란했고, 요승·권승은 수행보다 권력과 금력, 심지어는 세속적인 쾌락에 더 많은 흥미를 느껴 날뛰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일반신도는 아는 것도 없이 덮어 놓고 절에 가 엎드려 절이나 하고, 염불하면 복을 받고 극락에 가는 줄 아는 실정이었다. 도대체 사람이 자기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지 않고도 일이 잘되고 살림이 좋아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마음 바르지 않고
행실이 올곧지 못 한데
살림 좋아지는 법 없어


불교가 국교나 다름없는 시대에 불법을 옳게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제일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눌은 정혜사(定慧社)라는 조직을 만들고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오로지 마음 바로 잡는 일을 권하고 가르치기에 전력을 쏟았다. 염불, 염불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염불인가. 스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설명했고, ‘염불요문’이라는 짤막한 글을 남겼다.

오늘 이 시대의 불교도들은 과연 얼마나 더 부처님의 교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지난날의 그릇된 습관은 지금까지도 구정물처럼 우리 불교계의 체내에 흐르고 있다. 가신님의 말씀이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 못난 후손이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감히 스님의 말씀을 전하며 충심으로 호소한다. 정신 차리자.

‘염불’ 이 말은 부처님의 훌륭한 모습, 그 덕, 그 지혜롭고 자비하심을 잊지 않고 생각하여 그 이름을 외우는 일,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처님은 열가지 이름[十號]이나 그 훌륭한 대인의 모습[三十二相]이 보여주듯 참으로 여여하신 분이다. 이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모든 잡념망상을 끊어버리는 것. 그것을 모든 경전은 입을 모아 권고하고 그 공덕을 찬양하고 있다. 그것이 염불이다.

초기경전들은 염불의 공덕을 강조한다. 제아무리 많은 죄악을 범한 사람이라도 죽을 때에 일념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고 기리며, 마음을 모으면 천상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례를 들어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을 보면, 왕의 물음에 대해 나선은 이와 같은 답변하고 있다,

“여기에 큰 돌들이 100개나 배에 실렸다고 하자. 그러나 튼튼한 배에 실린 돌은 물속에 가라앉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 죄 많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어느 때던지 염불을 하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에 태어날 수가 있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옛날 고려 때 지눌 스님이 안타까이 여겼듯이 공염불(空念佛)만 하면서 극락에 가려는 그러한 신도가 나올 수 있다. 나선장로가 말하고자한 본뜻은 튼튼한 배와 같은 튼튼한 믿음, 털끝만한 사심도 없이 희고 맑은 지성(至誠)된 마음이 생기기만 한다면 돌처럼 무거운 죄인이라 할지라도 물속에 가라앉지 않는다는 뜻인 것이다.



 
이기영(1922~1996)

전 동국대 교수는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불교철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 귀국해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불교학을 현대화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저서로 ‘원효사상’ 등이 있다.

 

 

[1428호 / 2018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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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 2018-02-18 21:55:50
이분이 비록 불경의 한글화작업에 매우 큰공덕이 있으나 석가여래의 깨달음이 인간의 윤리라고나 이해한 한글번역이어서 불교종지를 석가여래가 깨달은 대로 바르게한글화하는데 큰장애만 되고만 꼴이되었다. 법륜스님같은 스타스님도 이를추종하고 있으니 옛날 세존이 자신의 깨딜음전도를 망서린 속을 알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