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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간 붓다의 고뇌와 결단의 의의

범천 권청에 의한 설법은 중도실천의 표상

최근에 우리사회는 정보통신기술망의 획기적 진보에 따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여 관련 산업계를 비롯한 기업과 정부, 그리고 학계의 모든 분야에서 미래사회에 대한 논의와 대비문제 등으로 한창 분주한 듯하다.

연민에 의한 설법 결심은
출세간서 세간 향한 자비
붓다 깨달음 체험 내용이
연기법임을 명확히 제시

이러한 최첨단의 과학기술 시대에 과연 불교를 비롯한 현대종교들이 준비하고 선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일찍이 서구의 여러 종교학자나 종교인들이 선언했듯이, 종교의 시대는 이미 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인들의 세속화는 늘 문제시되었지만, 이보다는 더 본질적으로 신앙으로서의 종교나 신행으로서의 종교적 의미가 시대적으로 점점 퇴색해가는 상황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사회에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한 사람들도 자살을 기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우리사회가 외형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정신적 허탈감이나 실존적 고뇌는 오히려 과거보다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시대적・사회적 상황은 불교의 사회적 역할은 과연 무엇이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되묻게 한다. 과연 인간의 행복이란 욕망을 추구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욕망을 극복하거나 다스리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욕망을 전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이요, 욕망을 완전히 극복하거나 다스리는 것도 그다지 쉽지 않은 점은 딜레마이다.

이와 관련하여 ‘범천 권청’의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에 대해서는 ‘잡아함’이나 ‘율장 대품’ 등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붓다는 6년의 고행 끝에 정각을 이룬 후 자신이 깨달은 법을 설해야할지 침묵해야할지 주저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뇌한다.

‘내가 깨달은 이 법은 매우 깊어서 보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 법은 고요하고 미묘하여 사유를 벗어난 지혜로운 자(智者)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착하기 쉽고, 집착을 즐긴다. … 모든 것은 서로 의지해서 생기는 것(相依性)이며, 조건(緣)에 의해 일어난다. … 그러나 탐욕과 분노에 불타고 있는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는 일은 쉽지 않다’라고 생각하여 법을 설하지 않기로 한다.

이에 범천은 붓다의 침묵으로 인해 이 세상에서 아라한이 깨달은 정법이 소멸할 것을 염려하여 법을 청한다. 결국 붓다는 중생들을 위한 연민(憐愍)으로 설법을 하기로 결심한다는 것이 ‘범천 권청’이라는 에피소드의 주된 내용이다.

사실 ‘범천 권청’이 제시하는 종교적・상징적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우선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이 연기법임을 암시하는 것과 붓다의 침묵이 동일선상에서 취급된다는 점이다. 또한 붓다의 설법, 즉 진리에 대한 가르침(교법)의 출발점이 연기법이라는 깨달음의 체험내용에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초기불교에서 아직 교법을 설하거나 교단이 형성되기 이전에 붓다가 제시하는 이러한 열반의 길이나 깨달음의 길은 무명이나 번뇌로 인한 욕망을 완전히 극복하고자 하는 출세간 지향의 삶이다. 다시 말해서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 직후 붓다 자신은 이미 깨달음이나 열반의 평온하고 적정한 법열을 맛보면서 진정으로 출세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바로 서있는 이 사바세계는 탐욕과 번뇌 등에 물들어 있었고, 자신이 설하는 연기의 도리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 있을지 염려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대로 열반에 들어갈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일견 심리적으로 고뇌하는 붓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범천의 권청을 계기로 결국 교법을 설할 것을 결단하는 붓다의 자세는 출세간에서 세간을 향하거나 출세간과 세간을 아우르는 중도적 입장을 표방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붓다의 자세는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듯하다.

김재권 동국대 연구교수 marineco43@hanmail.net
 

[1428호 / 2018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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