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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인 마디(Maddī)의 꿈과 베산타라의 해석

부인의 흉몽을 잠자리 불편 탓으로 해석

▲ 산치 제1탑의 북문 상인방 끝에 새겨진 베산타라와 그의 가족들. 숲속의 유배생활 중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의 모습이다.

대부분은 베산타라(Vessantara) 자타카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베산타라는 시비국의 왕자로서 이미 부인 마디와 아들과 딸이 있었다. 그의 왕국에는 가뭄 때에 비를 내려주는 신비로운 흰 코끼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웃 왕국에서 가뭄이 들어 그 코끼리를 원하자, 베산타라는 주저 없이 코끼리를 이웃 나라에 선사한다. 왕자 베산타라는 보시를 즐겨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보배를 버렸다고 생각한 백성들은 분노했으며, 이들의 들끓는 원성으로 왕자는 가족과 함께 추방된다. 숲 속으로 쫓겨났지만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들이 원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차와 말까지 다 주어버린다.

자신이 행한 보시 완성 위해
아이들까지 내어준 베산타라
싯다르타가 야소다라의 꿈을
자기에 맞춰 해석한 것과 흡사

동시대 불교 스토리텔러들이
동일한 꿈이 소재로 등장할 때
유사한 해석을 제시했던 결과

그렇게 은둔자의 생활을 하면서도 그의 보시행은 끝나는 법이 없었는데, 한 번은 부인 마디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집을 나간 사이 바라문 탁발승이 찾아와 베산타라에게 그의 아이들을 달라고 요청한다. 베산타라는 도망 다니는 자신의 아이들까지 달래어 그 바라문에게 흔쾌히 보시했으며, 나중에는 바라문의 요청에 따라 다시 자신의 부인까지 보시한다. 이러한 보시의 과정에 등장한 바라문은 사실 제석천이었으며 결국 제석천은 베산타라의 보시행을 찬탄하며 그의 모든 소유를 베산타라에게 돌려준다. 가족들도 그의 품에 돌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베산타라는 왕궁으로 돌아오게 된다.

보시 바라밀을 강조한 이 유명한 자타카 이야기는 비교적 상당히 길고 자세하게 진행되는데 숱한 사원의 회화와 조각을 통해서 자세히 표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는 마치 힌두교의 라마야나와 같이 이상적인 인간상과 왕의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실제 고대 아시아 국가들에서 왕권의 강화에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긴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는 매우 짧은 꿈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베산타라와 마디가 아이들을 데리고 숲 속에서 살고 있었을 때였다. 숲 속에 있던 주자카(jūjaka) 바라문은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그의 초막으로 향했다. 베산타라의 아이들을 얻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가 그 집 근처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저녁이었고 곧 열매를 따러갔던 아이들의 어머니 마디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마디가 있으면 아이를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바라문 주자카는 고민 끝에 집 근처 산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고 다음 날 마디가 집을 나가면 아이들을 베산타라에게 청할 생각이었다. 바로 그날 밤 마디는 꿈을 꾸게 된다. 끔찍한 꿈이었다.

검은 그림자의 남자는 두 벌의 황색 옷을 입고 있고 귀에는 붉은 꽃을 꽂고 있었다. 그는 초막 안으로 걸어와 마디 자신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녀를 밖으로 질질 끌어내어 땅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동안 그는 마디의 두 눈을 뽑아버렸고 두 팔도 잘라 버렸다. 그 다음 가슴을 찢어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심장을 꺼내 그것을 가지고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마디는 엄청난 공포에 휩싸이며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는 이 얘기를 할 사람은 베산타라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한밤중에 그에게 꿈을 해석해 보라고 말한다. 마디가 꿈을 그대로 이야기하자 베산타라는 속으로 생각한다. ‘내 보시의 완성이 이루어질 수 있겠구나. 오늘 나의 자식들을 요구하는 사람이 찾아오겠어. 마디를 위로해서 밖으로 나가도록 해야겠어.’ 그리고 마디에게 이렇게 꾸며서 해몽한다. ‘어젯밤 잠자리가 불편하거나 먹은 것이 소화가 안 되어 머리가 아팠던 모양이구려. 걱정할 것 없어요.’ 아침이 오자 마디는 아이들을 안아주고 주의를 당부했다.

아마도 마디는 베산타라의 해몽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베산타라에게도 아이들을 특별히 당부한다. 그러나 마디의 꿈은 현실이 된다. 베산타라는 꿈에서 예견된 사람을 집 앞까지 나가서 기다렸을 뿐만 아니라, 바라문 주자카를 피하기 위해 덤불 속으로 숨은 아이들까지 직접 불러내 바라문 주자카에게 넘겼던 것이다. 베산타라는 숨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사랑하는 아가, 이리 오너라, 내 보시의 완성이 이루어지도록. 어서 나오거라, 내 마음이 정갈해지도록. 내 뜻을 따르거라.’

이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베산타라의 행동과 말들은 후대의 주석가에 의해 많은 논란을 낳는다. 보시의 완성을 위해서 아내를 속이고 자식을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선한 목적의 성취는 어떻게 불공정한 과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이런 질문은 오늘의 꿈 이야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 베산타라의 부인 마디의 꿈 이야기는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금방 알아차렸겠지만 이 부인 마디의 꿈 이야기와 베산타라의 해석은 지난 회에 이야기했던 야소다라 혹은 고파의 꿈과 싯다르타의 해석과 거의 똑같은 형태로 그려지고 있다. 야소다라는 싯다르타가 왕궁을 빠져나가기 전날 밤 가족의 이별을 암시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서 야소다라는 벗겨진 채로 전신이 칼로 잘려나가는 꿈을 꾸지 않았던가. 베산타라 자타카에서 현생의 붓다와 야소다라는 과거생의 베산타라와 부인으로 그려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붓다와 야소다라의 꿈 이야기의 저자와 베산타라의 본생담 저자가 과연 동일 인물이었을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마도 동시대의 불교 스토리텔러 뿐만 아니라 후대의 이야기꾼들까지도 동일한 꿈의 소재들이 등장했을 때 거기에 거의 유사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것은 불전문학들이 지속적으로 여성들의 꿈에 대한 ‘어떤 두려움’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꾸는 꿈은 실제로 그렇게 현실화되지만, 꿈의 해석은 많은 경우 남성들의 입을 통해서 계속 무시되거나 축소되고 또는 전복된다. 이것은 마치 불전문학들이 보여주는 암묵적 담합이거나 어떤 기계적인 불전문학의 창작법을 보는 것과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불전문학에 나타나는 세속적인 여성의 꿈은 많은 경우 불교적 가치와 대립적으로 나타난다. 가족과 자식, 남편에 대한 애정은 출가와 깨달음, 보시의 완성 등과 같은 불교의 중요한 가치들과 대립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성의 꿈은 매우 직관적이고 예언적인 것으로 그려지지만, 무시되거나 축소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적대적 설정은 불교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적대적 꿈 해몽의 전문가들, 즉 바라문이 꿈의 내용을 해석하는 과정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바라문들의 해몽은 가끔씩 여성들의 청탁을 받고 의도적으로 꿈의 뜻을 왜곡하는 자들로 그려진다. 또는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목적으로 왕을 이용하기 위해 왕과 여왕의 꿈을 멋대로 해석하는 자들로 그려낸다. 이러한 의도는 여성의 꿈과 바라문들의 꿈을 연결시킴으로써 이들의 예언적 능력을 동시에 평가 절하할 수 있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심재관 동국대 연구초빙 교수 phaidrus@empas.com
 

[1428호 / 2018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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