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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더라도 계율이다

역대 수많은 고승들은
죽음 앞서도 지계실천
부처님 닮아가려는 노력

계율은 부처님의 말과 행동을 닮아가도록 만든 제도적 장치다. 그렇기에 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부처님을 닮아가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계율은 수행과도 불가분 관계에 있다.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올바른 사유와 선정도 이뤄지기 어렵다. 따라서 계율은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단순한 속박이 아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위대한 속박’인 셈이다. 부처님이 입멸에 든 후 제자들이 교설을 결집하기에 앞서 율장부터 정리했던 데에서도 그 중요성이 잘 드러난다. 계율은 부처님 교설의 생명으로서 계율이 확립됐을 때 교설도 확립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고승전’에는 중국 동진 때 고승인 여산혜원 스님이 마지막 순간까지 계행에 철저하려 했음이 잘 나타난다. 416년 8월, 83세였던 혜원 스님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됐다. 그렇게 6일째 되던 날 병이 더욱 위중해졌다. 이때 누군가 된장을 넣은 술이 효험이 있을 거라고 말하자 원로스님들과 대중들이 이를 마시기를 간곡히 권했다. 그러나 혜원 스님은 “율장에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잠시 후 원로들이 쌀로 쑨 죽을 드시라고 권하자 “정오가 지났다”며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오후불식(午後不食)’의 계율 때문이었다. 그러자 대중들이 이번에는 꿀물을 타서 권하니 “율장에서 허용하는지 확인하라”고 말했다. 제자가 율장을 뒤적이는 동안 위대한 신앙의 수호자이자 엄격한 계율의 실천자인 혜원 스님은 적멸에 들었다.

죽음의 순간까지 계율을 엄수하려는 모습은 당나라 초의 혜군 스님에게서도 잘 나타난다. 강백이면서 율사이기도 했던 스님은 일거수일투족이 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혜관 스님이 74세가 되던 637년 여름, 중풍을 앓던 스님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이때 스님은 문도들을 불러 때아닌 때에 음식을 찾더라도 먹을 것을 절대 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 후 스님이 사경을 헤매며 미음을 찾기에 문도들이 “공양시간(齋時)이 지났습니다”라고 말하자 곧 입을 다물고 다시는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해 7월26일 입적한 혜관 스님은 마지막까지 계율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으며, 그의 문도들도 스승이 끝까지 청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혜원‧혜군 스님 외에도 젊은 시절 약을 잘못 복용해 돼지고기로 약 기운을 눌러야 한다는 의원의 말에 어떻게 다른 생명체를 희생할 수 있겠냐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인 당나라 도무(道撫) 스님, 유행병에 걸려 의원이 짐승의 지방성분을 섞어 만든 약을 처방하자 이를 거절하고 깨끗이 몸을 씻은 뒤 입적한 양나라 혜소(慧韶) 스님. 이들도 계율을 어겨가며 오래 살기보다 일찍 죽더라도 청정한 계율을 지킨 스님들이다.

▲ 이재형 국장
신라의 자장율사가 “계를 지니고 하루를 살다가 죽을지언정 계를 어기며 백 년을 살기 원치 않는다”고 했듯 수많은 선지식들이 계율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고난이나 죽음까지 기꺼이 감수했다.

한국불교의 위기는 계율정신의 위기다. 계율을 외면하고서는 어떤 방편과 노력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제 더 이상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서 출가자라느니, 불자라느니 말하지 말자. 계율을 가벼이 여기면서 스님답게, 불자답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29호 / 2018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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