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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덮인 세상

기자명 성원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8.02.26 14:26
  • 수정 2018.02.26 14:27
  • 댓글 0

올겨울 제주도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종일 내리는 눈을 치우다 지쳐 잠들기도 했다. 하루일과를 시작하려 다시 창을 열면 어제 치운 눈보다 곱절이 더 쌓여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시 멍하니 눈을 바라다보기를 일주일 이상 반복했던 것 같다.

평화올림픽 발원한 평창올림픽
한반도 관계 해빙무드 전환돼
전쟁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부처님 지혜·자비로 해결해야

 
제주가 따스한 남쪽나라라고 꿈꾸었던 시절도 다 지나간 것일까? 한라산 쪽은 더 심하게 눈이 내렸다. 하나뿐인 공항 활주로는 잠시 눈을 치우면 몇 대가 이착륙하고, 그 사이 쌓인 눈을 다시 치우다보니 연착에 연착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늦어지는 건 양호했다. 많은 항공기 운항이 취소되고 온통 마비상태였다. 몇 년 사이 기록적 폭설이 이어졌다. 특히 올해는 강설일수로는 가장 길게 연속해 눈이 내렸다. 일기예보에 밤부터 눈이 멎는다고 했지만 아침이면 온 산하 도시가 설국으로 변했으니 예보도 믿기가 힘들다.

바쁜 일정도 없어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니 천지에 쌓인 눈이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세상은 그토록 뽐내던 자신들의 모습을 눈 아래 감추고 굴곡만 겨우 나타내고 있다. 육지 지인들에게 이 아름다운 제주의 한라산의 설경을 함께 보자, 즐기자 할 수도 없어 혼자 바라보고 있노라니 애틋함까지 더 하여 더욱 아름다운 듯했다.

이기적 생물인 사람들은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을 오래 간직한다고 한다. 우리들은 얼굴에 화장을 하고 아름답게 꾸미려 하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도 아름답게 각색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억울했거나 왜곡되었던 과거를 들추어내면 처음에는 흥미를 가지지만 금세 짜증을 내곤한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니 과거사의 많은 일들도 제대로 된 것이 없어 보이나보다. 흥분에 가깝게 들추어지는 과거사를 보면서 사람들은 드라마에 빠진 사람들 마냥 흥미를 가진다.

혜인 스님께서 하신 법문이 생각난다. “아무리 더러운 똥오줌도 흙으로 잘 덮어두면 좋은 거름이 되어 맛난 곡식과 과일을 우리들에게 선사해 준다”고 하셨다. 요즘 화두가 된 적폐들도 오래 덮어두면 우리 사회의 좋은 거름이 될 수 있을까? 조금은 자신이 없다. 확 청소를 하고 나면 맑은 물이 되어 우리 삶을 더욱 윤택하고 아름답게 꾸며 줄 수 있을까?

평창올림픽이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올림픽을 꿈꾸었다. 올림픽으로 대립과 갈등의 한반도가 평화로운 터전으로 바꿔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오래 경색된 남북관계가 이번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화해무드로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는 오랜만에 해빙의 무드를 열어 북쪽 사람들이 내려오자 못마땅한지 평양올림픽이라고 빈정대기도 했다. 한반도 갈등의 골이 깊어져 우리에게 좋을 일이 없을 텐데도 갈라진 반도의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는 세력들이 있다.

▲ 성원 스님

 

우리나라에서 남북교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의 방식이 우리에게는 더 평화로울 거라 믿고 있는 것이리라. 미국과 일본은 연일 한반도 갈등이 깊어져 전쟁을 일으키고 싶은지 ‘코피작전’을 떠들고 있다. 누군가에게 맞아 코피가 난사람이 그냥 주저 앉아만 있을까? 전쟁이 일어나면 결국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민족이 감내해야 한다. 그 뒤에서는 이익을 헤아리는 무리들이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눈이 세상을 품고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주듯이 우리 남과 북도, 보수도 진보도, 우리 종단내부의 일들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로 감싸 안는다면 눈 덮인 산하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평창에서 평양으로 함께 평화를 이루어 우리 민족이 세계만방으로 팽창해 나가는 올림픽이 되기를 축원해본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429호 / 2018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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