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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어머니 그리고 아들

“모든 자식들, 어머니에겐 오역죄인 아닐까?”

▲ 자식에게 모든걸 뜯어먹힌 차문다 여신. 뉴델리 국립박물관 소장.

인도로 부처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2월1일 왕사성(王舍城)에 있었습니다. 왕사성은 산스크리트로는 ‘라자그리하’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힌디어로 ‘라자기르’라고 합니다. 그 ‘라자기르’에는 불교 최초의 절 죽림정사(竹林精舍)도 있고 영축산도 있습니다.

어머니 몸에서 살았다 해도
절대 어머니 될수없는 아들

뉴델리의 국립박물관에는
힌두교 모신 차문다 여신
다른 여신과는 달리 표현
자식들에 모두 뜯어 먹혀
심장, 위장, 폐, 간도 없어

모든 자식들 차이 있을 뿐
부모 가둔 아사세와 같아

그런데 정토신앙의 입장에서는 ‘관무량수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관무량수경’의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빔비사라왕과 위제희 부인이 갇혀 있었다는 감옥터가 지금도 있습니다.

물론 ‘관무량수경’이 인도 찬술이 아니라 5세기 전반 중국에서 찬술되었다고 하는 학설이 있음을 생각한다면 곧바로 그 감옥터에서 그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놀라운 것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경전 성립에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정보력이 아닌가 합니다. 성립사의 일은 어떻게 되었든 우리는 다시 경전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자기가 낳고 기른 아들로부터 아버지 어머니 모두 옥에 갇히게 된 기막힌 일을 당했을 때 어머니 위제희 부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 심정을 헤아려서 ‘어떤 어머니2–위제희 부인’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보았습니다. 길지만 소개해 봅니다.

나는 다 헤아리지 못한다 amita
어머니 몸 속에서 한 몸으로 살았다 한들
어머니가 되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왕위가 무엇이건대 권력이 무엇이건대
제 아버지를 옥에 가두고
굶겨 죽이려 하는 아들놈을
심지어 굶어죽어가는 아버지를 살리려
몸에 꿀을 발라서 남편을 먹이려는
제 어머니마저 죽이려 한 패륜아

“대왕님, 왕위를 위하여 아버지를 죽인 경우는 수도 없이 많지만 아직 역사에는 어머니를 죽인 임금은 없습니다. 최초의 레드라인을 넘으시렵니까?”

용기있게 충언을 다한 신하들 덕분에
겨우 살아남은 어머니
 
그 어머니 마음을 나는 다 헤아리지 못한다 amita
 
그러면서도 그 아들놈을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
그런 패륜아라도 아들이라서
탯줄 자르듯이 자르지 못하는
탯줄은 잘랐어도 아들이라 사랑만은
자르지 못하는 어머니
그런 오역죄(五逆罪)를 범한 패륜아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주어야 한다
마음먹은 어머니, 그 어머니의 마음을
 
나는 어머니가 되어보지 못한
나는 다 헤아리지 못한다 amita
 
그런 오역죄의 패륜아 아들놈마저
구원될 수있는 새로운세상 새로운 나라
어디 없습니까 부처님!
부처님을 찾고 정토를 찾았던 그 어머니
 
선인도 하물며 왕생하거늘
오역죄의 악인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 자비로운 세상
더 이상 자비로울 수 없는 나라
그런 나라를 저에게 보여 주소서
기원했던 그 어머니, 그 어머니의 아들 사랑을
 
나는 모른다. 다 헤아리지 못한다amita

그런데 말입니다. 당신은 아사세가 아닌가요? 저는 아사세입니다. 우리 어머니를 물질의 감옥 속에 가둔 일은 없었지만 실제로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가둔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 저 역시 아사세처럼 오역죄를 범한 중죄인입니다.

2월5일, 뉴델리의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에서 힌두교의 모신(母神) 차문다(Chamundā) 신상을 보았습니다. 차문다는 ‘차문디(Chamundī)’라고도 합니다. 차문다는 다른 힌두교 여신들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힌두교 여신들의 신상을 보신 분들은 잘 알겠습니다만 모두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하고 허리는 잘록합니다. 풍요와 다산(多産)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차문다만은 달랐습니다. 삐쩍 말랐습니다. 광대뼈가 드러나 있고 피부에서 기름기라고는 하나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젖가슴도 밋밋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배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장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심장도 간도 폐도 위장도 모두 없습니다. 겨우 대장의 일부만이 남아 있습니다.

단독의 신상도 있었고 칠모신(七母神)이라고 해서 일곱 명의 모신을 한꺼번에 조각한 것도 있었습니다. 역시 일곱 모신들 중 여섯 모신은 모두 풍만한 여신들인데 유독 차문다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뜯어 먹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차문다 모신(여신)은 그렇게 아들들에게 다 뜯어 먹히는 존재입니다. 차문다 모신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어머니 역시 그런 분이셨고 저 역시 그런 어머니의 내장을 다 뜯어먹었기 때문입니다. 4남매 중에서, 안 낳아도 좋았을 ‘우엣것(appendics)’ 막내로부터 가장 많이 뜯어 먹혔습니다.

일본에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라는 작가가 있었습니다. 자기 관 속에 ‘침묵’과 ‘깊은 강’을 넣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두 작품에 가장 큰 애착이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그 중에 ‘깊은 강’은 바로 뉴델리 ‘국립박물관’의 차문다 모신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차문다와 같은 존재, 그런 강으로서 ‘갠지스(강가 恒河)’를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원래 가톨릭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깊은 강’ 속에는 가톨릭의 정통교리와는 다른 입장을 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힌두교의 영향도 있어 보입니다.

엔도 슈사쿠의 작품세계를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작품에서도 모티브로 삼았던 차문다 모신으로 상징된 어머니의 희생을 말씀드리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차문다 모신처럼 아들이나 딸에게 뜯어먹히는 어머니의 존재, 그러한 존재로서 위제희 부인을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까지 ‘관무량수경’에서 모두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제 시 ‘어떤 어머니2–위제희 부인’을 통해서 그런 부분까지 보완해 보았습니다.

아들이나 딸은, 자식들은 어쩌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머니를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때때로 가두었던 아사세가 아니었을까요? 우리 모두 오역죄인이 아닐까요? 다만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신다면, 역전(逆轉)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가시고 안 계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어머니를 아미타 부처님께 ‘위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아미타 부처님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lokavid48@daum.net
 

[1429호 / 2018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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