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도난 하루 만에 되찾은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3. 도난 하루 만에 되찾은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 이숙희
  • 승인 2018.02.2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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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관광객 안내 맡던 인물이 국보 절도

▲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통일신라, 높이 14.5cm. ‘한국의 국보’(문화재청, 2007).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경내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목조삼존불감은 1962년 12월20일 국보 제42호로 지정된 후 10년이 지난 1974년 10월9일 새벽에 도난당했다.(사진 1) 10월9일 오전 8시경 한글날 휴일을 맞아 송광사에 놀러왔던 전매청 직원 5명이 성보박물관 관람을 하려다 출입문의 빗장자물쇠가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지 스님에게 알려주어 도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찰 박물관에 보관 중이었던
대원군·김정희 그림 훔쳤다가
발각돼 사찰에서 쫓겨난 후에
앙심품고 국보·보물 절도 범행

인천 골동품상서 매각 거래중
도난문화재 눈치챈 주인 신고
목조삼존불감·주자원불 되찾아
범인 안씨 38일 만에 검거하고
금동요령도 강원 장성서 회수


사찰에서는 유물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전시가 끝나면 금고 안에 보관을 하고 저녁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30분 간격으로 2명의 스님이 순찰을 해왔다. 유물을 도난당하기 전날인 8일에는 관람객 200여명에게 유물을 관람시키고 마지막으로 오후 7시에 박물관의 자물쇠를 잠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재 전문절도범들이 박물관 철제출입문의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 금고 안에 보관 중이던 국보 제42호 목조삼존불감과 보물 제176호 금동요령(사진 2), 그리고 진열장에 있던 시도유형문화재 제28호 고봉국사주자원불 등 귀중한 문화재 3점을 훔쳐서 달아난 것이다.

그중 목조삼존불감과 주자원불은 10월10일 오전 인천시 남구 숭의동에 있는 골동품상 고전사(古錢社)에서 도난당한지 하루 만에 되찾았다. 주인 이모 씨는 “9일 밤 8시반경에 168cm 가량의 30대 남자가 삼존불감과 주자원불 등 2점을 가지고 와서 ‘비싼 물건을 사겠느냐’고 제의했다. 100만원을 달라고 해서 노는 날이니 10일에 돈을 지불하겠다고 한 뒤 선금으로 5000원만 주고 물건을 보관하고 있다가 도난문화재임을 알고 문화재관리국에 신고했다”고 하였다. 또한 범인은 주인 이씨에게 “판돈 중 10만원은 문화재를 건네준 대처승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여 공범이 있음을 시사하였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지난달까지 송광사에 있다가 사찰 측과 불화로 쫓겨난 전 송광사 교무부장이었던 절도전과 1범 안모씨와 주지스님과의 알력으로 쫓겨난 강모 승려를 수배하였다. 안 씨는 송광사에서 관광객 안내를 맡고 있었는데 지난 3월22일 송광사박물관에서 대원군의 ‘국화초그림’ 1점과 ‘완당 김정희화첩’을 훔쳤다가 주지스님에게 들켜 쫓겨났다. 또 지난 8월12일에는 해남 대흥사에서 염주 3개를 훔쳤고, 9월18일에는 전라남도 장성군 백양사에서 영정 6점을 훔치는 등 주로 전라남도 지역의 사찰을 떠돌아다니면서 문화재를 훔쳐 팔아왔던 것이다. 강씨 역시 지난 8일 광주 증심사 주지를 송광사 주지로 추대하려다 쫓겨난 승려였다. 치안국은 송광사 국보 도난사건의 범인 안씨를 범행 38일 만인 11월15일 오후 3시경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임지리 면사무소에서 검거하였다. 안씨는 그동안 강원도 장성읍의 탄광 등지에서 광부로 가장하여 숨어 있었는데 본적인 지산면 면사무소에 호적초본을 떼러갔다가 면직원의 신고로 붙잡혔다. 행방을 몰랐던 금동요령도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 문곡리 김모씨 집근처 야산에서 찾았다.

▲ 금동요령, 통일신라말∼고려초, 높이 21.5cm. ‘국보’ 5 공예(예경, 1992).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은 몇 차례 위기를 넘긴 적이 있다. 1949년 8월 한 여름날 국군 토벌대장이었던 양모 대위가 순찰차 들렀을 때 절을 돌아보고 난 다음 그중 마음에 들었던 목조삼존불감을 달라고 요구한 일이 있었다. 당시 주지스님은 목숨을 걸고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후 계속되는 양 대위의 온갖 협박과 위협에도 주지스님의 신념과 기개로 끝내 굴복하지 않고 목조삼존불감을 지켜내었다. 6·25 한국전쟁 때에도 이 불감이 약탈당할 것을 염려하여 스님들이 피난가면서 땅 속에 묻어 두었기에 지금도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온전히 모셔져 있다.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은 높이 14.5cm, 폭 7.5cm로 전단목(栴檀木)을 재료로 하여 만든 것이다. 전체 형태는 원통형으로 펼치면 가운데 감실을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감실이 달려 있는 여닫이 형식이다. 이 목조불감은 송광사를 개창한 16국사 중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원래 불감은 몸에 지니고 다니며 예불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며 주로 집 안에 모셔두거나 개인적인 예배대상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불상을 봉안하고 장엄화 하는 전각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크기는 작지만 독립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송광사 목조불감의 감실은 장막처럼 늘어진 천개 위에 보주와 비천이 장식되었다. 그 아래에는 연좌대좌 위에 앉아 있는 석가불좌상을 중심으로 문수와 보현보살이 좌우 감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석가삼존불상과는 달리 석가불은 나한과 보살이 함께 배치된 군상이며 보살상은 사자(獅子)와 코끼리를 대좌형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본존불인 석가불상은 양쪽 어깨를 덮고 있는 통견의 법의를 입었으며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시무외인을 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서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다. 이와 같이 왼손으로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표현은 시무외인과 함께 인도 간다라 불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손모양이다.

석가불상의 주위에는 협시보살과 함께 나한상 2구가 배치되어 있어 5존불 형식이며 그 앞쪽에는 공양 보살상 2구가 한쪽 다리를 내린 유희좌 자세로 앉아 있다. 오른쪽 감실에는 실천을 통해 자비를 나타내는 보현보살상이 코끼리 위에 반가좌로 앉아 있고 손에는 막대기 모양의 지물을 쥐고 있다. 왼쪽 감실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상이 사자 위에 앉아 있으며 보현보살과 같은 지물을 들고 있다. 문수와 보현보살의 대좌 옆에는 각각 보살입상 1구가 서 있으며 그 앞쪽에는 옷을 입지 않은 이국적인 모습의 특이한 인물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좁은 공간 안에 여러 상을 빽빽하게 조각하였지만 복잡하지 않게 거리에 따른 공간감이나 입체감을 잘 표현하였다. 각 상의 세부표현에서도 섬세한 조각기법과 장식성이 잘 어우러져 있다. 특히 전단목으로 만들어진 점이나 불감의 형식, 복잡하고 섬세한 구성 등에서 일본 와카야마현(和歌山県) 고야산(高野山) 곤고부지(金剛峯寺)에 있는 중국 당대 목조불감과 매우 유사하다.

송광사 목조삼존불감은 크기는 작지만 독립된 형태를 가진 것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불감 중에서 특이한 예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불상 양식과 건축 양식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불감으로는 간송미술관 소장의 금동불감을 비롯하여 지리산 천은사 금동불감, 미국 하버드대학 포그미술관에 소장된 금동불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금동불감 2점, 경기도 양주 수종사 5층석탑 발견의 금동불감 등 모두 6점이 알려져 있다. 그중 조선 초기에 제작된 수종사 금동불감 1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려시대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29호 / 2018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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