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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이윤학의 ‘전생의 모습’

기자명 김형중

홀로 살 수 없는 인간 삶 갈대에 비유
죽고 산 갈대 통해 전생·현생 삶 묘사

작년에 자란 갈대
새로 자란 갈대에 끼여 있다

작년에 자란 갈대
껍질이 벗기고
꺾일 때까지
삭을 때까지
새로 자라는 갈대

전생의 기억이 떠오를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전생의 모습

현생 갈대가 전생 갈대 모르듯
인생도 지혜의 눈 떠야 알게 돼
현재 내 모습은 전생 나의 모습
좋은 인에 좋은 결과 오는 인과

아이는 어른의 전생 모습이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들의 자화상이다. 어제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는 내일 또한 있을 수 없다. 현재 나의 모습은 그 동안 평생을 살아온 나의 모든 것의 종합 결정체이다. 뿐만 아니라 조상님, 아버지와 어머니의 DNA까지 융합되어 포함되어 있다.

시인은 1연에서 “작년에 자란 갈대/ 새로 자란 갈대에 끼여 있다”고 하였다. 3연에서는 “전생의 기억이 떠오를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전생의 모습”이라고 읊고 있다.

인간은 홀로 살 수가 없다. 갈대처럼 서로 의지하여 매서운 겨울 강바람을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함경’에서 연기법을 설법하면서 ‘갈대의 비유’를 들었다. 갈대 두 개가 서로 만나 신혼부부가 되고 또 그 사이에서 새로 갈대가 태어난다. 비로소 부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칭호를 하사받고 이 아이는 함께 가정을 이룬다. 가정이 조그만 갈대의 숲이다.

시인은 죽은 갈대와 산 갈대의 비유를 통해 전생과 현생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작년에 자란 갈대가 새로 자라는 갈대에게 전생의 기억이 떠오를 때까지 곁에 있어주듯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에게 자신의 전생의 사유와 경험을 끊임없이 전수해 주고 있다. 새로 태어난 자식이 온전하게 자랄 때까지 부모는 껍질이 벗기고, 허리가 꺾일 때까지 몸뚱이가 삭을 때까지 곁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양육시키며 깨우쳐 준다.

갈대의 세계에서 현생의 갈대는 전생의 갈대를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어 지혜의 눈을 뜨면 알 수 있다. ‘과거현재인과경’에 “과거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거든 현재 지금 내가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미래의 내 모습을 보고 싶거든 현재 지금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을 보라(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고 하였다. 현재 내가 받고 있는 모습이 전생의 나의 모습이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곡식을 거둬들일 수가 없다. 젊었을 때 땀을 흘려 일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이것이 좋은 원인이 있으면 좋은 결과가 생겨난다고 하는 인과법칙이다.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인과는 우주 자연의 이법이고,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불교는 과거·현재·미래 삼세 윤회관을 주장하나, 서양종교는 과거 전생을 부정한다.

‘전생의 모습’이 수록된 이윤학(1965~현재))의 시집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의 서문에 해당하는 시 ‘시인의 말’에서 그는 “현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과거와 미래와 타협하지 마라.…오직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읊고 있다. 이윤학 시인은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청소부’로 등단하여 지훈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윤학의 ‘전생의 모습’을 읽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서 ‘자화상’이란 시를 한 편 써 보았다.

“비 오는 날/ 혼술에 취해 울었다/ ‘통 되는 일이 없네 금생은 틀렸어’/ 호프집 벽거울/ 돌아가신 아버지 나타나/ 아들의 짠한 모습 곁에서 지켜보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29호 / 2018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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