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8. 고로쇠 수액은 잎사귀가 되어야 한다

기자명 최원형

영양과잉 시대에도 고로쇠나무 수난은 계속된다

만물이 겨울잠을 털고 반짝 눈 뜨는 경칩이다. 이미 남녘에는 봄까치꽃이 하나 둘 꽃망울 터트리며 양지바른 들판을 쪽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따스한 기운을 따라 노랑 양지꽃이 괭이눈이 또 바닥을 점점이 채워갈 것이다. 큰 나무들이 잎을 내고 우거지기 전에 얼른 한 살이를 마치려는 야생화들의 바지런함이 반갑다. 바람결마저 가볍고 부드럽다. 창밖을 내다보니 앞산이 한결 유순하게 느껴진다. 둔탁하고 무겁던 겨울 껍질을 벗고 있는 중인가보다. 저 숲에 나무들은 지금쯤 열심히 물을 빨아올리며 꽃눈을 잎눈을 부풀리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그 역동하는 기운이 공기 속에서 전해진다. 멋쟁이새가 털괴불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조금씩 통통해지고 있는 겨울눈을 뜯어먹으며 기다리는 봄이다. 벌써 봄을 보았는지 묻지 않아도 이미 봄이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두드리는 드러밍 소리도 봄이 되니 달리 들린다. 벌레를 찾느라 쪼아대던 소리와는 달리 긴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만들어진 둥지에서 작고 여린 생명이 잉태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드러밍 리듬이 슬쩍 일러준다. 해마다 겨울 가뭄, 봄 가뭄이 되풀이되고 있는 마당에 이렇듯 봄에 또 꽃들이 찾아오니 눈물겹도록 고맙다. 지독하게 가물어 꽃봉오리를 매단 채 말라버린 나무들을 봤던 몇 해 전 5월 이후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의 시계를 확인하는 내 마음은 늘 조마조마하다.

나무에 물오르고 들꽃 피는 계절
도시에 봄소식 전해주는 것들
‘고로쇠 수액’ 판매한다는 광고
수액 필요한 건 사람 아닌 꽃눈

나무에 물이 오르고 풀꽃들이 꽃을 피우는 이른 봄, 도시에 봄소식을 알려주는 것에는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본다. 봄나물들은 비닐하우스에서 겨울 내내 재배가 되니 새로운 봄소식일 수 없다. 내 생각에는 고로쇠수액이 아닐까 싶다. ‘고로쇠 수액 판매’ 라는 광고 문구가 도시에서 ‘봄이 왔어요’ 로 읽힌다면 과장일까? 봄이면 어김없이 마트며 백화점에서 고로쇠 수액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고로쇠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고로쇠 수액통은 도시인들에게 꽤나 익숙해졌을 것이다. 고로쇠나무가 부쩍 이 나라 숲에 많아진 걸까? 대체 저 많은 수액들이 어떻게 이 도시에 쌓여있을 수가 있을까? 내가 고로쇠나무를 처음 만났던 때가 십년도 훌쩍 넘은 어느 해 초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무렵은 실제 숲에서 만난 나무와 도감에서 봤던 나무를 확인하며 알아가던 때였다. 겨울이어서 가지만 앙상한 나무를 쳐다보며 대체 뭐라 불리는지 아무리 알고자 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고개를 숙이는 바로 그 순간 나무 아래 떨어진 잎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에 힘이 조금만 들어가도 바스라질 듯 마른 잎사귀를 조심스레 손바닥에 올려놓고 살펴봤다. 옆에서 같이 나무를 살피던 친구는 그게 누군지 단박에 알겠다며 단풍나무과라고 힌트를 줬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도 없고 잎은 일곱 갈래로 아주 살짝 갈라져있을 뿐인데 단풍나무과라니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혼란스러운 만큼 궁금증도 커져 잎사귀 생김새를 잘 기억하고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고로쇠나무였다. 이름도 참 독특하다 생각했는데 뼈에 이로운 나무라는 뜻의 한자어인 골리수에서 고로쇠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에게 유용한 나무여서 붙여진 이름이었다는 걸 알게 되니 이 나무의 수난사가 그려졌다.

이른 봄 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이산 저산에 있는 고로쇠나무들은 마치 링거를 꽂고 병든 환자모습이 된다. 나무에서 시작된 호수는 길게 산 아래로 이어지다 커다란 통에 이르러서야 끝이 난다. 한 나무에 호스가 몇 개씩 꽂혀있는 나무를 보는 일은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겨우내 목말랐을 나무가 날이 풀리면서 빨아올린 물은 나뭇가지로 전해져서 잎눈이며 꽃눈을 키우는데 쓰여야 한다. 고로쇠 수액을 마시기 전에 그 수액은 무엇을 위해 세상에 나왔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먹을 게 귀하고 약초가 의사와 약사를 대신하던 때라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게 자연에 기대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라면 조금 덜 주고 조금 더 받는데서 문제 될 게 없다. 그런데 일방적인 착취 구조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영양은 이미 과잉시대 아닌가. 얼마나 많은 약이 넘쳐나는데 우리가 정말 고로쇠의 수액까지 꺼내 마셔야 내 몸이 건강해지고 내 뼈가 튼튼해질까? 가뜩이나 가뭄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는데 어쩌자고 우리는 이 나무의 수액마저 강탈해야하는가 말이다. 고로쇠수액이 가야할 곳은 마트나 백화점이 아닌 꽃눈과 잎눈이어야 한다. 나무처럼 우리 역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자연의 질서에 뿌리를 묻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좀 더 겸손해야져 하고 좀 더 배려해야 할 것 같다, 자연을 대함에 있어서.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30호 / 2018년 3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