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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판테온의 우물반자

기자명 주수완

세계 최초 콘크리트 돔 지붕 만들어 건축에 우주 담아내

▲ 좁은 골목길을 지나 만나는 로톤다 광장에서 바라본 판테온 신전의 위용. 608년 이후에는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되면서 삼각지붕 위에 종탑이 설치되기도 했지만, 19세기 후반 철거되었다.

아직 바티칸 미술관에서 소개할 작품이 더 남아있지만 박물관 안에서만 머무는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순서를 바꿔 잠시 로마 시내로 나가보기로 한다. 오늘 안내해드릴 곳은 판테온이다.

로마 판테온은 만신전 의미
정복한 곳 신까지 모두 봉안

2천년 전 직경 43.3m 돔 완성
두오모 건립 전 세계 최대 돔

돌·벽돌 아닌 콘크리트 구조
대리석과 같은 신비한 느낌

돔을 빙 둘러 격자형이 반복
속에 담긴 별 청동판 다 유실

별을 달아 우주 자체를 상징
법당 안의 우물 천장과 비슷

동서 건축 모두 우주 축소판
법당 천장에서 판테온 느껴

판테온은 ‘모든(pan) 신(theon)’이라는 의미로서 흔히 만신전(萬神殿)으로 풀이된다. 로마 시대에 그들의 신 뿐 아니라 그들이 정복한 곳의 신까지 모두 봉안한 신전으로서 건립되었다. 하지만 이 거창한 이름과는 다르게 워낙에 골목길 사이로 옹기종기 집들이 모인 공간에 둘러쌓여 있다보니 버스로(특히 64번 노선이 주요 유적을 많이 지난다) 인근 큰 길에 내려 조금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로마의 옛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코 지루한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즐거운 여행이다. 수많은 건축가들이 찾아와 찬탄했던 건물이니만큼, 피렌체 두오모를 설계한 필리포 부르넬레스키도,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을 설계한 미켈란젤로도 아마 필자가 걸었던 이 길을 따라 판테온에 다가왔으리라. 특히 판테온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과는 티베리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으니, 미켈란젤로가 돔을 설계할 때 아마도 바티칸과 판테온을 잇는 바로 그 길로 오갔을지도 모르겠다.

역사상의 수많은 건축가들이 판테온을 그토록 찬탄했던 이유는 바로 이 건물의 돔(dome)이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피렌체의 두오모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의 돔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기원후 120년 무렵에 직경 43.3m에 달하는 돔을 만들었다니 그 찬탄이 결코 헛된 명성이 아님을 알겠다(참고로 워싱턴 국회의사당의 돔 지름이 33m이다). 물론 기원전 450년경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도 이미 파르테논 신전이라는 그야말로 불세출의 건축이 세워진 바 있지만 판테온은 단순히 크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어진 건축이라는 점에서 건축사에 있어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된다.

돔은 다리나 문을 만들 때 쓰는 아치, 우리말로는 홍예라고 하는 구조를 360°로 돌려서 벽과 일체화된 지붕을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기둥을 세워 건축의 몸체를 만드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건물을 거대하게 만들수록 그 지붕을 어떻게 덮을 것인가 하는 점에서 늘 한계에 부딪치고는 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나무로 지붕을 덮는 것이지만, 나무의 내구성을 극복하기 위해 기와가 필요했고, 또한 나무가 아무리 커도 일정 이상 길이의 목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구조적으로 극복하여 보다 큰 지붕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목조건축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서양은 아치를 입체적으로 돌려 돔을 만드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지붕구조에 활용하여 내구성을 강화했는데, 서양의 중세 고딕건축에 이르러서 비로소 보편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세의 기술자들이 보기에 판테온의 돔은 일종의 롤 모델이 될 만했다. 그러나 비록 많은 건축가들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판테온을 찾았지만, 판테온의 기법을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판테온의 돔은 돌이나 벽돌을 쌓아 만든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으로서는 흔한 공법이지만, 당시로서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공법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콘크리트 안에 철근을 넣어 보강하지만, 판테온은 철근도 넣지 않고 찍어 낸 콘크리트 덩어리이다.

▲ 판테온의 돔 천정. SF영화 속 우주도시 같은 느낌이 드는 초현실적 공간이다.

▲ 불교적 우주관을 반영한 불교법당의 천정. 해남 미황사 대웅전. 어찌 불교의 판테온이 아니겠는가.

비유하자면 집을 나무나 벽돌로 쌓아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3D 프린터로 뽑아내는 첨단공법을 로마인들이 가장 먼저 시도한 셈이라고나 할까. 더구나 평범한 시멘트 느낌이 아니라 마치 대리석 같은 느낌이 드는 신비한 고대 로마의 콘크리트를 보고 있자니 안도 다다오의 전매특허 같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떠오른다. 로마의 수많은 건물들이 –콜로세움을 예외로 하면- 대부분 수많은 세월의 자연적, 인위적 파괴 속에서 사라져 갔는데, 이 건물은 거의 2000년의 세월을 버티고 서있다니 과연 판테온을 세운 건축가 자신조차 이것을 예상할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판테온은 과거 미대 입시생들이 석고상 소묘로 연습했던 그 아그리파가 기원전 25년에 처음 세운 것이지만, 그것은 화재로 불타버렸고, 지금의 판테온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기원후 125년에 재건한 것이다. 이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스스로가 건축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판테온도 그가 직접 설계했다고도 전해진다. 여하간 판테온의 설계자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였건, 아니면 그의 치세에 로마 제국의 건축을 담당했다던 아폴로도로스였건 간에 그들도 이 건축이 이토록 단단하게 살아남아 로마제국 토목건축술의 산 증인이 되고, 나아가 로마 문화의 부활을 꿈꾸었던 르네상스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게 되리라고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비록 콘크리트로 돔을 찍어내는 건축 기술은 계승되지 못했지만, 르네상스 시대 건축가들이 재건한 로마의 많은 건축물은 그들의 생각에 야만적인 게르만족의 고딕 건축을 대신하여 마치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을 연상시키는 기둥과 박공이 있는 판테온을 롤 모델로 하여 세워진 것이었다.

상상해보자. 그 화려했던 로마제국이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유린당하고, 이후 수많은 전쟁으로 불탔으며,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정신적으로 중심이 되었던 교황청마저 1307년부터 1377년까지 프랑스 아비뇽으로 강제로 이주되다시피 한 그 황량한 로마에 오로지 과거의 영광으로 홀로 남아있었을 판테온을. 지금은 르네상스 이후로 수많은 건축이 복원되어 그 틈새로 들어가 버렸지만, 미켈란젤로가 이곳을 찾았을 당시에는 가장 위대하고 쓸쓸한 로마의 대변자로서 서있었을 것이다.

특히나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완전히 새로운 건축적 공간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기둥 하나 없이 하늘높이 치솟아 있는 공간. 너무나 단순한 공간은 고딕 성당 내부의 화려하고 복잡한 구조와는 확연히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이탈리아 예술가들에게 고딕 예술은 너무 군더더기가 많고 번잡하게 긁어모은 잡동사니 같았던 반면, 단순명료한 판테온의 뻥 뚫린 공간이야말로 가장 이탈리아스러운, 가장 고전적인 양식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콘크리트 천정의 무게를 줄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서 뼈대 역할을 했을 격자형이 반복된 판테온의 돔은 수많은 공간적 경험을 한 현대인의 눈에도 매우 초현실적이고도 SF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마치 우주기지 안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 판테온 돔천정의 격자형 틀. 원래 별 모양의 도금한 청동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 미황사 대웅전의 금니로 범어가 그려진 우물천정. 마치 만다라를 펼쳐놓은 것 같다.

더구나 돔의 가장 꼭대기 부분이 뻥 뚫려있어 마치 우주식민지 안에 인공태양이 매달려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직경 8m의 이 구멍은 라틴어로 ‘눈’을 의미하는 ‘오쿨루스(oculus)’로 불리는데, 정말로 신이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렇게 천정에 구멍이 뚫려 있어도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마침 필자가 판테온을 방문했던 날에는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미안하게도 그 비는 실내로 고스란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원래는 판테온의 두꺼운 청동문을 닫은 상태로 실내에서 불을 피워 형성되는 더운 공기의 고기압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비를 어느 정도 막아주었다고 한다. 현재는 문을 열어 놓고 있어 그랬던가 보다.

비록 판테온의 콘크리트 뼈대는 잘 보존이 되어 있지만, 이 건축을 장식하던 대리석 타일이나, 지붕의 청동기와 등은 꽤 비싼 재료였기 때문에 후대의 교황들이 떼어다가 다른 용도로 써버리는 바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이 SF적인 거대한 돔 천정의 격자형 틀 속에는 금으로 도금된 별 모양의 청동판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모두 유실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별이 걸려 있었다는 것은 천정이 곧 우주 그 자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필자는 이 신비로운 천정의 격자형 틀을 보면서 불자들에게도 익숙한 법당 안의 우물천정이 떠올랐다. 이 격자형 우물천정에는 연꽃이나 악기, 금강저, 다라니와 같은 상징들이 가득 그려지는데, 마치 티베트의 만다라가 머리 위에 펼쳐진 듯한 느낌이 든다. 만다라야말로 불교적 우주관의 상징일텐데, 결국 법당의 설계자들은 천정을 비록 격자형 틀로 막아놓기는 했지만, 이 천정을 한 폭의 우주로 생각하고 마치 뻥 뚫린 공간을 통해 우주를 올려다보는 개념으로 인식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을 뵙느라 바쁘지만, 이제부터라도 한번 고개를 들어 그간 머리 위에 펼쳐져 있던 천정을 올려다보시길 권한다. 불교적 우주를 느끼실 수 있으리라. 비록 판테온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높지도 않지만 법당의 천정을 올려다보면 유사한 초현실적 우주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최소한 가성비 면에서는 우리 법당의 우물천정이 더 뛰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축은 우주의 축소판이었다. 우리에게는 우·주라는 단어가 곧 집 우(宇), 집 주(宙) 아니던가. 로마의 위대한 건축가들에게도 판테온은 신들이 머무는 우주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날 그 한가운데 섰던 한국에서 온 불교미술사학자는 판테온에게 ‘건축’이란 말 보다 ‘집’으로 불리는게 더 걸맞겠다고 속삭였는데, 그 사실을 신전에 모셔졌던 신들과 그리고 그곳에 함께 잠들어 있는 화가 라파엘로나 바로크시대 작곡가 코렐리가 엿듣고는 한국의 절집에 한번 와보고 싶어 했으리라 믿어본다.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30호 / 2018년 3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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