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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학술회의장서 열반한 이기영

기자명 이병두

‘학술열반’ 헌사받은 학계의 큰 별

▲ 1996년 11월9일 동국대에서 열린 한국불교연구원 주최 국제학술회의장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불연 이기영.

1996년 11월9일, 불연(不然) 이기영은 한국불교연구원 주최 국제학술회의에서 학자들의 경력과 학문세계를 일일이 소개하고 자신의 기조 발제를 마친 뒤 심근경색이 닥쳐 세상을 떠났다. 유학 시절부터 혼신을 다했던 불교 연구와 실천의 길을 가다가 이렇게 떠난 그에게 후학들은 ‘학술열반’이라는 헌사를 드렸다.

1996년 국제학술회의에서
학자들 학문 일일이 소개
심근경색 닥쳐 세연 다해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추앙

참선 수행 중 입적한 선사들처럼 심장 문제로 입원해있던 중 의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일시 외출하여 학술회의장에서 갑작스럽게 떠난 불연에게 후학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조의(弔意)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당시 불교계 언론뿐 아니라 주요 일간지에서 불연의 입적 소식을 전하며 한국 불교계와 학계의 큰 별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 사진은 불연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유족과 후학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학자에게 ‘학술열반’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이다. 이기영은 일찍이 청담 스님에게 설봉(雪峯)이란 법명을 받았지만 일생을 사모하고 탐구했던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서두에 나오는 “불연이대연(不然而大然)”에서 따온 자호(自號) 불연을 즐겨 썼는데 세상을 떠나면서도 이 구절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불연이 학술과 신행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맞추려한 것은 1974년 4월 황수영‧서경수 등과 함께 한국불교연구원을 창립하면서 그 취지문에서 “첫째, 불교의 사상‧역사‧예술 등을 연구…둘째, 올바른 신행의 정립…셋째, 한국불교의 해외선양…”이라고 밝힌 연구원 설립 목적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뿐 아니라 일찍이 1961년과 1964년 혼란의 와중에 있던 한국불교계를 대표하여 세계불교도대회에 참석하여 불교 외교를 담당하기도 하고 세계교회협의회(WCC) 주최 ‘불교와 기독교 대화의 모임’ 등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감리교 목사인 고 변선환 박사 초청강의를 진행하는 등 한국불교의 대외활동을 선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유네스코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경주 남산의 가치를 해외에까지 널리 알리는 일을 이어갔다.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범으로 원칙이 분명했던 불연은 승단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도 피하지 않았다. 1994년 4월 이른바 조계종의 개혁 불사에 힘을 실었고 그 직후 쓴 글에서는 “대처(帶妻)를 하면 속인이지 비구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말해두고 싶다. 다만 비구‧비구니가 아니면 불교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승불교가 되는 것임도 아울러 말해 두어야겠다. 출가든 재가든 보살이 되지 못한다면 대승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힌다.(1994~5 ‘신동아’)

한편 “승가(僧伽)의 힘은 옷에 있는 것이 아니요, 또한 이름에 있는 것도 아니다.…언제인가부터 승가의 개념을 출가자에게만 국한시키려는 좁은 견해가 지배하기 시작하였다”고 경고한다.

불연은 “철저하게 하심하는 불교의 무아사상 말고 더 좋은 양약(良藥)이 어디 있을까!”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약이 효험을 내려면 “옛 것을 옛 것 그대로 암기하거나 현대적 해석의 시도 없이 암송하고 답습하는 것으로는 우리 자신을 이 시대의 쓸모 있는 일꾼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30호 / 2018년 3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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