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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나치는 얼굴들

기자명 임연숙

이질적 문화에서 발견한 공감대

▲ 조니델 멘도사 作 ‘지나치는 얼굴들-PASS FROM THE FACES’, 50×70cm, 종이 위에 연필·먹·크레용 등 혼합재료.

몇 년 전 서울 인사동 어느 전시장에서 열심히 작품을 설치하는 한 작가를 만났다. 작가는 철망과 철망을 케이블로 연결하는 설치작업을 한창 마무리 중이었다. 다른 작품들도 보니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거나 동대문시장에 나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건축자재 중 하나인 다양한 굵기의 철망을 겹치거나 오려서 천장에 늘어뜨리는 작업과 종이 계란판을 재활용한 것들이었다.

정열의 남미 작가가 보여준
여백·선으로 이뤄진 동양미
고착된 편견 깨뜨린 계기돼

이날 만난 조니델 멘도사는 베네수엘라 태생의 작가다. 베네수엘라의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꽤 인정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한국 화랑의 후원으로 아트페어에 참여하면서 조국을 떠나 머나먼 한국에 와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의 역동성과 가능성에 매료된 작가는 동대문시장에서 다양한 건축 재료들과 컬러풀한 옷감과 패션 부자재 등을 자신의 작품에 다양하게 응용하고 있다.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문화와 자라온 환경, 그리고 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일 텐데, 조니델 멘도사의 작품이 주는 공감대는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철망이나 가는 철사를 이용하여 사람의 형상과 무리들을 표현하는 입체 작품은 비어있는 인체를 나타낸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모델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 아닌 다른 사람들, 타인의 군중 무리들이다. 군중을 표현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이다. 군중처럼, 나를 둘러싼 타인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여러 겹으로 레이어 된 작가 자신이다. 작가의 입체 작품은 드로잉을 연상하게 한다. 드로잉 된 인물들은 공간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익명성을 드러낸다.

소개된 그림은 조니델 멘도사의 드로잉이다. 드로잉은 원래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빠른 속도로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는 형태다. 느낌을 그대로 남기기 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에 때로는 심도 있고 깊이 있게 완성하는 완성작보다 작가의 호흡을 더욱 날것으로 느껴지게 한다. 감각의 응축과 발산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눈, 코, 입이 완성된 형태가 아닌 연필로 뭉개져 있다. 거기에 흰 오일파스텔로 오버랩 된 인물들이 겹쳐져 표현되었다. 인체가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것을 보니 작가의 설치작업을 위한 밑그림이 아닌가 싶다. 남미에서 온 작가의 그림은 빈 여백과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통해 상당히 동양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환경에서 살아왔어도 작품을 통해 느낌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은 걸까.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어두운 그림자 같은 인물들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평평한 단순한 실루엣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드려다 보면 약간의 움직임이 있다. 고개를 약간 숙이거나 몸을 정면이 아닌 측면을 향하는 등 움직임이 없는 곳에 약간의 움직임이 있다. 미묘한 변화를 좋아하는 작가의 예민한 감성이 느껴진다. 남미 작가라고 하면 일반적인 선입견은 정열이나 열정, 그리고 컬러풀한 그림일 것이다. 이 또한 남미의 현대미술을 폭넓게 접하지 못한 편견일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접근이 필요한 만큼 작품을 통해 동시대 다른 지역의 작가들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호기심과 감동을 느끼게 한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30호 / 2018년 3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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