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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세이’와 24교구본사제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국회 질의과정에서 ‘겐세이’라는 일본말을 사용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론 광복 70주년을 훌쩍 넘긴 시점에 이런 일로 무슨 호들갑이냐는 견해를 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역사가 남긴 상흔과 그 영향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존속되고 있는 한 이 같은 사례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심각성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2018년, 지금 이 시점의 한국불교는 과연 식민지 불교의 잔재를 온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우리는 아직 ‘식민지 불교’의 실체조차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국불교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현재 24교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24교구는 각각 교구본사와 그에 소속된 말사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에 새롭게 형성된 특별교구를 제외한다면 조계종 소속의 모든 사찰은 결국 본·말사의 편제 속에 자리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찰 편제는 가장 대표적인 식민지 불교의 잔재에 해당한다.

일제는 1911년 6월3일 ‘사찰령’과 그 시행규칙을 반포하면서 본격적인 불교 통제정책을 시행해 나갔다. 이때부터 조선총독부는 불교계의 인사, 재정, 행정 등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른바 ‘30본말사법’은 이 과정에서 시행된 악법이었다. 일제는 전국의 모든 사찰을 30개의 본사와 각 본사에 소속된 말사로 편제한 이후, 각 본사의 주지는 총독에게, 말사의 주지는 지방장관에게 허가를 얻어야 취임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제정하였다. 이후 30본사는 31본사로 늘어나기도 하였지만, 일제의 강점이 끝나는 시기까지 한국의 모든 사찰은 ‘31본말사법’에 의해 통제되는 현실에 처하고 말았다.

대한제국 시절 우리 불교계에 일시적으로 ‘대법산-중법산’ 제도가 시행된 적은 있다. 1902년 7월 반포된 ‘국내사찰현행세칙’ 36개조에 의해 동대문 밖에 있던 원흥사를 대법산으로 하고, 각 도에 있던 16개 중요사찰을 중법산으로 지정한 사례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1904년 원흥사를 관할하던 사사관리서가 폐지되면서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였다. 전국의 사찰을 본·말사 체제로 나눈 이후 불교계 전체를 권력의 힘으로 통제하는 형식은 일본불교 제도를 일부 변형시킨 것이었으며, 이것은 결국 식민지 불교를 상징하는 제도였음이 분명하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에서 “조선의 사찰을 살펴보면, 본래 계급이 없었고 세력을 살펴보아 경중을 가렸을 뿐”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의 30본산은 일단 정해진 법에 따라 계급과 등분이 시행되고 행정적인 조례가 있어, 설사 천만의 파순(波旬)이 있다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불교의 운세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면서 30본말사법의 시행을 적극 반기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였다. 이능화의 이러한 견해처럼 일제가 시행한 30본말사법, 그리고 그것을 계승한 지금의 조계종 24교구 본말사 제도는 과연 ‘불교의 운세가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해방 공간에서 불교계는 식민지 불교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전개하였다. 특히 1945년 9월22일 개최된 전국승려대회에서는 사찰령과 태고사법, 31본말사법 등의 즉각적인 폐지를 결의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승단은 본말사법을 척결되어야 할 식민지 불교의 잔재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1911년, 이 땅의 모든 사찰은 부당한 권력자들에 의해 느닷없이 ‘본사’와 ‘말사’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 멍에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많이 늦긴 하였지만 조계종을 이끌어가고 계신 스님들께 본말사제도가 지니고 있는 식민지성의 문제점, 그리고 그 제도의 근본적 개혁 필요성에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431호 / 2018년 3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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