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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는 선물

기자명 희유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8.03.12 14:04
  • 수정 2018.03.12 14:05
  • 댓글 0

동안거 해제와 더불어 맞이한 정월대보름날, 복지센터에서는 오곡밥 공양 후 각양각색의 세시풍속 놀이로 하루를 시끌벅적하게 보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은 많은 어르신들이 활동하는 강당 바로 옆에 있어 어르신들의 일상을 아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정월 대보름날 강당에서는 제기도 차고 복조리도 만들며 시끌시끌 어르신들의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대보름 복조리 만들며 한 이야기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청춘같아
살아있음 감사하며 현재에 충실
곁에 있는 선지식 보며 수행정진

그날은 결재해야 할 일이 많아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한 직원이 복조리를 내밀며 “관장스님 우리 센터 어르신들은 역시 서울 어르신들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복조리를 받아들며 모양을 살피니 복조리가 분명한데 뭔가 영~어설퍼 웃음이 나왔다.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오랜 도시 생활을 하는 동안 복조리를 만들어 본 것은 처음”이라며 “어려웠지만 재미있고 옛날 생각이 나 즐거웠다”고 하신다. 다른 분은 “제기차기는 쉬워 보여 도전했지만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시며 껄껄 웃으신다. 어르신들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을 돌아봤다. 지금도 마음은 20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몸은 앉았다 일어나면 입에서 저절로 “어구구~” 소리가 나고 다리에서는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마음은 정말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후에는 센터 내 탑골미술관에서 지난해 신인작가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개인전 개막식의 사회를 맡은 실버도슨트(예술작품 해설사) 어르신은 살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연륜에서 묻어나는 노련한 진행으로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행사의 막이 올랐다. 어르신들의 지지와 격려가 젊은 작가가 앞으로 화가로서 굳건히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나도 젊은 작가에게 응원의 힘을 보탠다. 나는 센터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마주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주어진 시간들에 최선을 다하시는 어르신들,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나 자신도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곤 한다.

센터에 많은 어르신들을 보면서 ‘정말 선지식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르신들은 “살 만큼 살았다” “이제 살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워져 오니 오늘 하루가 너무 소중해진다” “젊어서 하고 싶었던 것을 요즘 마음껏 해 본다” “나에겐 지금이 선물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옛날에는 그냥 흘려버리던 말들에 요즘 깊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면서 옛날 강원에서 배우던 수많은 경전 속의 부처님 말씀들이 생활 속에서 나와 함께 숨 쉬고 살아가고 있는 것임을 새삼 느끼고 부처님의 위대함을 찬탄한다. ‘잡아함경’에 “지나간 일에 대해 근심하지 않고, 미래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현재에 얻어야 할 것만을 따라 바른 지혜로 온 힘을 다할 뿐,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센터의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도 꼭 그렇다. 지나온 것은 근심하지 않고 그저 당신에게 주어진 지금 현재의 시간을 참 열심히도 산다는 생각이 든다.

▲ 희유 스님
어르신들은 배움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서예를 배우신 어르신들은 설날에 붓글씨로 지방을 써서, 악기를 배우신 어르신들은 공연을 하며 각자의 방법으로 지금 현재를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런 어르신을 보면서 공감하고 배우며 정진하는 지금이 나에겐 선물이다.

희유 스님 서울노인복지센터 시설장 mudra99@hanmail.net

 


[1431호 / 2018년 3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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