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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오디세우스의 귀향

기자명 김정빈

불성은 우리가 마침내 돌아가야 할 궁극적 고향

 

전쟁 후 귀향길 오른 오디세이
트로이 떠나 고국에 가기까지
갖은 고초와 난관 겪게 되지만
모험 가득한 귀향은 해피엔드

물리적 고향 잃게 되더라도
심리적 고향은 언제나 낙원

 

 

 

▲ 그림=근호
‘일리어드’와 함께 고대 서양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던 이타케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기까지의 모험담 이야기이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맨 처음 도착한 곳은 키코네스 족이 사는 이스마로스라는 항구였다. 무력 충돌이 일어나 배 한 척과 여섯 명의 부하를 잃은 오디세우스는 그곳을 떠나 아흐레 동안 바다를 표류한 끝에 ‘연(蓮)을 먹는 사람들의 나라’에 도착한다.

그곳 사람들이 식용하는 연실에는 고향을 잊어버리고 그곳에서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효능이 있었다. 연실을 먹은 일부 부하들이 한사코 그곳에 머물기를 고집하자 오디세우스는 그들을 배에 묶어 놓은 상태로 그곳을 탈출했다.

그다음으로 그들이 도착한 곳은 퀴클롭스들의 섬이었다. 퀴클롭스는 ‘둥그런 눈’ 이라는 뜻이며, 이름 그대로 그곳 사람들은 이마 한가운데 둥그런 눈알이 하나만 달려 있었다. 섬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한 동굴에 살고 있는 폴리페모스라는 퀴클롭스에게 술을 바치며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 괴물은 도와주기는커녕 오디세우스의 부하 둘을 잡아 동굴 벽에 던져 절명시키더니 뱀이 개구리를 먹듯이 먹어버리는 것이었다.

거인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세우스는 그를 죽일 수는 없었는데, 그것은 동굴 입구가 오디세우스로서는 밀쳐낼 수 없을 만큼 아주 큰 바위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지와 용기의 화신인 오디세우스는 교묘한 수단으로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실명시킨 다음 그 섬을 탈출했다.

그 다음으로 그의 일행이 도착한 곳은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섬이었다. 아이올로스는 방해가 되는 바람을 자루에 넣어 은사슬로 주둥이를 묶은 다음 오디세우스에게 주었다. 문제는 출항한 다음 오디세우스가 잠들자 자루에 보물이 담긴 것으로 여긴 그의 부하들이 사슬을 풀어버린 데서 발생했다. 역풍이 불어 오디세우스의 배는 아이올로스의 섬으로 되돌아갔고, 아이올로스는 화를 내며 더이상의 도움을 거절했다.

오디세우스 일행의 그다음 모험은 라이스트뤼고네스 인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그들은 먼저 항구에 배를 댄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공격하여 모두 죽였다. 항구 밖에 있던 오디세우스는 부지런히 노를 저어 위험 지역을 빠져나와 아이아이에 섬에 도착하게 된다.

아이아이에 섬에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 키르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사자, 호랑이, 이리들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짐승들은 동물답지 않게 매우 점잖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본래 사람이었는데 마술사인 키르케가 짐승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그녀는 선발대로 도착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까지 돼지로 변화시켜버렸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에게 칼을 휘둘러 부하들을 구출해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을 고쳐먹은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했다. 문제는 환대를 받는 동안 환락에 빠진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데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부하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시금 고향을 향해 출발했다.

그 다음으로 오디세우스는 세이렌들이 노래하는 지역을 통과하게 된다. 세이렌은 신비로운 노래를 부르는 요정들이며, 그 노래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깃들어 있어서 노래를 듣는 선원들은 바다에 빠져 죽게 마련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부하의 귀를 밀랍으로 봉하고 자신의 몸은 돛대에 묶어놓을 것과 세이렌 섬을 통과할 때까지 부하들이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말게 함으로써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 후로도 오디세우스 일행의 모험은 이어져 그들은 두 괴물이 사는 섬, 트리나키아 섬, 바다의 요정 칼립소의 섬, 파이아케스 인들이 사는 스케리아를 거치게 된다. 오디세우스로부터 그가 거쳐온 파란만장한 모험 이야기를 들은 스케리아의 왕과 왕비는 오디세우스가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하여 20년 만에 이타케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의 아내 페넬로페가 수많은 구혼자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페넬로페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짠다는 핑계를 댄 다음 낮에 짠 베를 밤에는 풀며 결혼 상대자를 선택할 마지막 순간을 지체시키고 있었다.

페넬로페가 결혼 상대자를 정해야 하는 마지막 날, 오디세우스는 거지 모습을 하고 구혼자들의 모임에 등장한다. 페넬로페는 자신의 남편이 사용하던 활에 시위를 매어 보라고 구혼자들에게 요구하지만 구혼자 중에 활을 구부려 시위를 맬 만한 힘을 가진 자는 없었다. 그 순간을 기다려 오디세우스가 나서 능숙하게 활에 시위를 맨 다음 자신의 적들을 남김없이 쏘아 죽임으로써 그의 모험 가득한 귀향은 해피엔드로 마무리된다.

예전에는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내던 ‘고향(故鄕)’이라는 말에서 이제는 낡고 허름한 느낌을 받는다. 현대인에게 ‘향(鄕)’이라는 말은 평화와 행복을 누리던 장소로서의 어린 시절의 시골이 아니라 발전이 덜 된 지역으로서의 누추하고 궁벽한 시골을 의미할 때가 많다. 지금 우리에게는 고향이 없다. 있었다 하더라도 잊어버렸거나 잃어버렸다.

그것이 물리적 고향이라면 없거나 잊거나 잃어버려도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 사람들에게 고향은 물리적인 것이자 심리적인 것이었다. 그들에게 고향은 갖은 고난을 감수하면서라도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심리적 원점이자 낙원이었다.

오디세우스(영어로는 오디세이)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20년의 고초와 모험을 바쳐야만 했다. 서양 사람들에게 ‘오디세이(odyssey)’는 사람 이름이기도 하고 ‘경험이 가득한 머나먼 여정’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머나먼 여정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간 오디세우스는 예전 사람이었다. 지금도 명절이 오면 많은 도시 사람들이 시골로 간다. 그때에 한하여 그들 또한 잠시 예전 사람이 된다.

우리는 왜 가끔 예전 사람이 되어 시골로 떠나는 것일까. 시골은 고향이고, 고향은 과거이며, 과거는 원점에 닿고, 원점은 원초를 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기였던 원점 시절 우리는 낙원에 살았었다. 아기 이전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먼 미래에나 우리는 불성으로 산다. 불성은 불교인의 원초이며, 마침내 돌아가야 할 종교적 고향인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31호 / 2018년 3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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