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약자는?
89.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약자는?
  • 최원형
  • 승인 2018.03.13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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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은 옆모습이 저 꽃은 뒷모습이 어여쁘다

얼마 전 양산에 있는 통도사엘 다녀왔다. 마침 정월대보름에다 동안거 해제가 있던 날이라 주차장부터 사람들로 분주했다.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옆 개울물은 돌돌거리며 흐르는데 봄볕에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다웠다. 완연한 봄을 느끼기에 충분한 풍경이었다. 경내로 들어서서 좀 걷다보니 사람들로 유난히 북적이는 곳이 눈에 띄었다. 이무렵 통도사의 핫스폿이라 불리는 영각 앞 홍매화나무였다. 수령이 370여 년쯤 되었다는 나무의 자태는 웅성거리는 사람들 너머로 배경처럼 보였다. 가까이에서 쳐다보니 많은 꽃봉오리 사이로 드물게 만개한 꽃이 언뜻언뜻 보였다. 모인 이들은 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한 꽃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바빴다.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돌아서는 한 보살님에게 어떤 꽃이 제일 예쁘냐는 질문을 슬쩍 던졌다. ‘저 꽃은 옆모습이 예쁘고 이 꽃은 뒷모습이 예쁘고’ 우문에 돌아온 현답이다. 옆모습도 뒷모습도 예쁘다는 그 말이 두고두고 귓가에 남았다. 꽃 하나하나가 따로 또 같이 예쁘게 어우러진 모습이 피면 피어서 봉오리는 또 봉오리대로 홍매화나무 전체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다는 걸 그 보살님이 툭 던진 말 속에서 알아챌 수 있었다. 다양한 방향을 향해 핀 꽃, 같은 듯 조금씩 다르게 생긴 꽃이어서 예뻤던 거였다. 그러고 보니 개울에 놓인 돌의 생김새도 모두 달랐다. 크고 작은 돌들이 어우러져있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큰 돌이 작은 돌을 내리누르지 않고 큰 돌 위에 작은 돌이 얹혀져있는 모습은 그대로 조화로웠다.

통도사 영각 앞 홍매화 바라보며
시간의 찰나 엿볼 수 있음 느껴
강자와 약자 대립하지 않을 때
꽃 조화롭게 피어날 수 있을 것


요새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억눌려왔던 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고통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는 피해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참담하다. 하루가 천년 같았을, 길고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방황하고 힘들었을 그들에게 단지 몇 마디 말이 위로가 될까 싶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를 생각해본다. 피해를 입은 이들은 위계 구조에서 언제나 약자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평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약자는 강자의 억압에 눌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견디다 더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거라 생각한다.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대중들에게 자신을 지켜 달라 하소연하는 피해자도 있었다. 많은 이들의 지지가 이어지고 있고 그게 힘이 될 것을 믿는다.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그래도 소통할 수 있는 말이 있어서 타인의 괴로움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싶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약자 가운데 가장 약자면서도 단 한 마디 하소연도 못하는 무수한 생명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약자는 누구인가? 무엇일까?

봄이 성큼 다가서는 이 시기에 새들은 집짓기에 바쁘다. 날이 풀리고 머지않아 새잎 돋고 애벌레들이 꿈틀댈 시기에 맞춰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를 것이다. 때로 까치집을 없애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그 모든 이유에 앞서 그곳이 새들의 생사가 달렸다는 것을 단 한번이라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까치가 살다 떠난 집은 또 다른 새들의 안식처가 된다. 그렇게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동안 어미는 새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새끼도 어미도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어미는 마지막으로 새끼들에게 나는 법을 알려준다. 마침내 새끼들이 둥지에서 날아오르면 그걸로 새끼와 어미는 영영 이별이다. 가끔 꾀꼬리 같은 새들은 다음 해에도 둥지에 찾아와 새로 태어난 동생을 돌본다고 한다. 어미를 도와 동생 새들에게 먹이를 물어 나르기도 한다니 놀랍다. 이런 역할을 생태분야에서는 헬퍼라고 한다. 헬퍼의 역할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숲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여름철새인 꾀꼬리가 이듬해 둥지를 찾아왔는데 숲이 사라졌다면 어떨까를 상상해봤다. 어미를 도와 함께 키울 동생 새들을 끝내 만나지 못했을 때의 그 황당함을 꾀꼬리는 무어라 항변할까?

17세기에 심었던 나무의 꽃을 40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지금 이 순간 볼 수 있다는 건 일상에서 만나는 기적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꽃을 본다는 것은 과거부터 흐르고 있는 시간의 찰나를 보는 일이다. 그 나무에 오간 새들이며 피고 졌을 꽃들, 그 꽃을 반기고 돌보던 사람들이 모두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그곳 바로 그 순간 존재하는 게 꽃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본 꽃은 꽃이며 벌이며 새며 그 나무를 돌본 어느 보살님의 손길의 총합인 것이다. 보드라운 떨림으로 다가오는 봄날, 모든 생명의 조화로움을 생각해본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31호 / 2018년 3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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