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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수행 고소순-상

기자명 법보신문

▲ 78, 행원심
세월이 나이와 같은 속도로 지나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정신 차릴 여유조차도 없이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40년 교편생활 후 삼보에 귀의
불교대학 입학 불교공부 시작
취미 서예여서 사경수행 관심
‘반야심경’ ‘금강경’ 한문 사경

여태 뭘 하면서 그 긴 시간들을 보냈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젊을 땐 희망에 산다던 옛 시절도, 추억에 산다는 지금의 이 나이도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가니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그나마 가는 세월이 안타까워 무엇이든지 의지해 보고 싶은 아쉬움에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 위로가 된다.

이건 정말 나에게 주어진 좋은 기회이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자신에게 칭찬한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었다. 40년 교편생활을 끝냈다. 쉬기만 하기는 다소 무료하단 생각이 들어 대광명사 불교대학에 입학했다. 대광명사에 불교대학이 개설되고 1년 뒤였으니 불교대학 초창기였던 셈이다. 그때부터 강의를 듣기 시작해 지금까지 공부를 이어오고 있다. 교편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입장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간 나날이 즐겁기만 하다. 실상 교편생활 당시 신행생활은 없다시피 했다. 큰 법회가 있을 때 가끔 절에 왔을 뿐
지속적으로 기도를 하거나 교리공부를 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쉬느니 불교 공부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대광명사 불교대학은 기대 이상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불교가 심오한 종교라고 말로만 들어오다가 뒤늦게 알게 된 셈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니 마음 수양은 물론 삶의 의욕도 생기고 나날이 일에 집중력도 생겼다.

특히 평소 서예를 취미로 삼고 있었기에 사경수행에 유독 관심이 갔다. 사경은 누군가의 권유를 받거나 전문가의 지도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절에 오니 사경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사경본 책이 있었고, 그 책을 펼쳐서 기록된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었다. 주로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사경했다. 이후 서예를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화선지를 펼치고 벼루에 먹을 갈아 붓을 들고 한문으로 사경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절에서 지내는 재에 동참했다.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반야심경’ 한 폭을 써서 영단에 올렸다. 그렇게 동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에도 틈틈이 ‘반야심경’을 써서 영단에 올렸고 지금까지 올린 경전이 대략 300편 정도에 이른다.

‘반야심경’은 모든 경전을 총망라해서 압축해놓은 경전이라고들 말한다. 이렇게 경전을 올리면 돌아가신 분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위안이 되고 나 자신도 그 분들이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염원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재가 끝나고 나면 사경을 함께 소각할 수 있어서 쓰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하고 좋았다.

‘반야심경’ 사경을 올린 분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인연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또 절에서 큰 법회가 열릴 때에는 ‘금강경’ 사경을 올렸다. ‘금강경’은 한문 5000여 자로 이루어져 하루 서너 시간씩 15일을 꼬박 써야 완성할 수 있다. 그만큼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큰 법석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미리 ‘금강경’ 사경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사경수행을 이어오기를 여러 해가 지났을 즈음이었다. 건강이 좋지 못했던 여동생이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여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금강경’을 사경했다.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꼬박 9시간 만에 ‘금강경’을 완성했다. 아마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온전히 사경에 몰입했던 것 같다.

여동생을 입관할 때 간곡히 청했다. 사경한 ‘금강경’을 넣어달라고 부탁하자 지금까지 염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고 했다. 보통 정성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것을 들었다. 마지막 가는 동생을 위해 좋은 일을 했는가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1431호 / 2018년 3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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