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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명국의 ‘달마도(達磨圖)’

기자명 김영욱

마음을 보며 시절인연을 기다리다

▲ 김명국 作 ‘달마도(達磨圖)’, 17세기, 종이에 먹, 83×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齴齲來東十萬里(언우래동십만리)
梁王不契渡江西(양왕불래도강서)
九年無語成何事(구년무어성하사)
空使兒孫特地迷(공사아손특지미)

면벽중인 달마 표현한 작품
역동적이나 무심한 눈빛엔
고요한 마음 고스란히 담겨

‘달마가 동쪽으로 십만 리를 와서 양왕과 맞지 않아 강 서쪽으로 건너갔네. 구년 동안 말없이 무슨 일을 이뤘는가, 부질없이 아손들만 헤매게 하는구나.’ 유정(惟政, 1544~1610)의 ‘갈댓잎으로 강을 건너다(一葦渡江)’.

시선을 압도한다. 비단 시원시원하고 분방한 먹의 선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선으로 빚어낸 달마의 눈빛이 묵직한 무언가를 전한다. 달마 내면의 고요한 정신은 호방한 선의 흐름을 따라 깊은 울림의 대화를 시도한다.

달마는 서기 520년경에 중국으로 건너와서 양나라 무제와 대면하게 되었다. 길고도 짧은 대화가 오갔다. 서로가 인연이 아님을 알았기에 달마는 갈댓잎을 타고 강을 건너 쑹산의 소림사(少林寺)로 향했다. 단순히 두 사람의 개인적인 견해 차이로 인한 헤어짐이 아니다. 결별과 도강은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한 당시 중국불교에 대한 달마의 회의적인 견해를 대변한다.

흔히 달마가 소림사에 머무르며 9년 동안 면벽(面壁)에 전념했다고 한다. 벽은 곧 자신의 마음이다. 마음을 보는 것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달마의 육체는 점차 쇠해졌지만 안정된 마음은 깊고 고요한 눈빛을 통해 드러났다.

김명국의 ‘달마도’는 마치 면벽에 전념한 달마를 그린 듯하다. 진한 먹물을 듬뿍 묻힌 붓으로 시원하게 그린 가사(袈裟)는 역동적이고, 무심한 듯 묽은 먹물로 툭툭 그은 달마의 얼굴은 마냥 평정하기만 하다. 옅은 선으로 그려낸 달마의 눈매는 두껍고 강한 필치로 그린 가사 속에서도 강렬하고 묵직한 느낌을 자아낸다.

달마는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내면이거나 혹은 자신이 기다리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시절인연이라 했다. 모든 현상이 시기가 되면 깨어나고 일어난다는 말이다. 9년의 면벽에서 달마가 구하고자 한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외형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정신을 마음으로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그 깨달음은 이미 무제와의 만남에서 깨우쳤다. 그가 면벽에서 구한 것은 시절인연의 기다림이다. 달마는 자신의 마음속 선(禪)을 마음으로 전할 인물이 나타나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훗날 선종의 제2조가 되는 혜가(慧可, 487~593)가 입문을 허락받기 위하여 팔을 끊자 그에게 마음의 깨우침을 전하였다.

마음은 모든 존재의 근본이다. 온갖 현상은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 관심과 무관심, 만남과 이별, 사랑과 증오, 화해와 갈등 모든 행위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음이 안정되면 자연스레 모든 현상을 펼치고 거두어들인다.

깨달음은 단지 문자로 전해지지 않는다. 글이 없어도 어느 순간 마음에서 마음으로 자연스레 전할 수 있다. 그 마음의 시절인연을 기다리지 못하고 깨달음만을 구하고자 하는 중생들만 지금껏 헤매는 것이 아닐까.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31호 / 2018년 3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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