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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보물 지정되자마자 사라진 강화 백련사 철조아미타불좌상

기자명 이숙희

관음전 문고리 풀고 훔쳐간 후 30년째 묘연

▲ 백련사 철조아미타불상, 고려 후기, 높이 51.5cm. ‘도난문화재도록Ⅲ(지정편)’(문화재청, 2010).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위치한 백련사 관음전의 철조아미타불상은 1989년 4월10일에 보물 제994호로 지정되었으나 그해 12월에 도난당하였다(사진 1). 12월11일 밤 10시에서 다음날 새벽 4시 사이에 문화재 전문절도범들이 백련사 관음전의 창호지를 뚫어 안으로 걸린 문고리를 푼 다음 들어와서 불상을 훔쳐간 것이다. 이 불상은 도난된 지 거의 30년이 다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

1989년 4월 보물 제994호 지정
12월11일 밤 도난 후 거취 불명
높이 51.5㎝ 폭 34㎝ 크기 철불
지역 특색 반영해 조형미 갖춰
문화재 전문절도범 소행 추정뿐

사찰 창건 기록 조선시대 등장
‘동국여지승람’엔 고려산 언급
‘백련사지’ 기록 귀중품 목록엔
고려시대 불상·불화 8점 존재도

백련사는 삼국시대 중국에서 온 천축(天竺) 승려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백련사의 창건이나 연혁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이후 관련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1486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백련사가 고려산에 있다”고 처음 언급되어 있다. 1696년 이형상이 적은 ‘강도지(江都志)’에는 “고려산에 옛날 청련(靑蓮), 홍련(紅蓮), 벽련(碧蓮), 백련(白蓮), 자련(紫蓮)의 다섯 연사(蓮寺)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 절만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1783년에 간행된 ‘강화부지(江華府志)’의 ‘불우조’에 의하면, 천축국의 이승(異僧)이 오색의 연꽃을 허공에 날려서 그 꽃이 떨어진 곳을 따라서 각각 절을 세웠다. 이곳에 붉은 연꽃이 떨어지면 그 이름을 적련사라 하였고 흰연꽃이면 또한 백련사라 하였다고 한다. 18세기에 간행된 ‘가람고(伽藍考)’와 ‘범우고(梵宇攷)’에도 백련사가 존속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1866년 조선말 병인양요 때에는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하여 장녕전에 불을 지르자 권필이라는 자가 숙종과 영조의 초상화를 들고 나와 북문을 통해 이 절에 잠시 보관했다고 전한다. 이 내용들을 보면, 백련사는 청, 백, 적, 흑, 황의 오방색과 오방위가 연관되어 건립된 사찰로 19세기 후반까지 폐사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백련사와 관련된 기록은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사찰 관련 기록과 각종 지리지 등에도 보인다. 1905년에 기록한 ‘백련사중건기’에 의하면, 동진(東晋) 의희(義熙) 12년(416년)에 천축조사가 고려산에 와서 산정상의 오련담(五蓮潭)에 5색의 연꽃이 영롱하게 피어있는 것을 보고 5색의 연꽃을 한 송이씩 꺾어 공중으로 날린 후 그 꽃이 떨어진 곳마다 절을 각각 지었다. 여기에 백색의 연꽃이 떨어져서 백련사라 하였다. 1941년에 간행된 ‘전등사본말사지’ 제4장에도 백련사의 창건시기와 관련하여 같은 내용이 적혀 있고 끝부분에만 적련, 백련의 두 절도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백련사 경내에 칠성각(七星閣, 5평), 대방(大房, 24평), 요사(寮舍, 17평), 부속사(附屬舍, 11평), 역부사(役夫舍, 6평)의 목조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백련사지’의 귀중품 목록에는 고려시대 불상과 불화 8점이 있었다고 기록되었을뿐 불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1964년의 백련사 경내 사진을 보면, 이때는 극락전과 입구에 위치한 선방(禪房)만 남아 있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 있다. 선방은 스님들이 참선하기 위한 일종의 토굴 형식의 방으로 불교의 선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집을 말한다. 아마도 1942년 이후 1964년 사이에 백련사는 사세가 크게 기울면서 많은 전각이 없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극락전 외에 나머지 전각들은 모두 근래에 사찰이 중창되면서 새로 건립된 건물이다.

▲ 강화 장정리 석조여래입상, 고려 후기, 높이 280cm. ‘강화의 유형문화재’(강화군, 강화역사문화연구소, 2017).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백련사는 5세기경 중국 남조에서 건너온 천축 출신의 승려가 건립한 사찰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철조아미타불상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불사가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강화 고려산 5개의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찰이며 여러 차례의 중수와 중창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백련사 철조아미타불상은 높이 51.5cm, 폭 34cm의 크기로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광배와 대좌가 모두 없어졌지만 고려 초기 철불에서 보이는 개성 강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종교적인 단아함이 엿보여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철을 재료로 하여 만들었는데도 주물과정에서 생기는 결함이 없고 표면도 거칠지 않다. 철은 쉽게 산화되고 굳으면 질감이 거칠어지는 재료상의 특성으로 금동불보다 내구성이 약할 뿐 아니라 정교한 조각을 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철불은 금동불이나 석불보다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기까지 한때 유행하였다. 신라 진골귀족들 간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던 불안정한 시기에 강성한 세력으로 등장한 지방 호족들의 힘을 보여주는데 철조불상이 효과적이었는지 철로 만든 여래상들이 많이 조성되었다. 당시 잦은 전쟁으로 인하여 동을 대신해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철로 불상을 조성하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백련사 철조아미타불좌상은 전반적으로 불상의 다리에 비해 상체가 긴 편이며 어깨는 좁고 밋밋하여 대체로 신체비례가 알맞지 않다. 약간 네모난 얼굴에는 좁은 이마와 가늘고 긴 눈, 짧은 인중을 지녔으며 오뚝한 콧날과 작은 입이 표현되었다. 자비로운 인상이라기보다는 무표정한 느낌을 준다. 턱은 이중으로 처리되어 약간 통통한 편이며 그 아래 짧은 목에는 수행의 세 단계를 상징하는 삼도(三道)가 굵게 새겨져 있다. 이러한 얼굴표현은 같은 강화도 지역에 있는 고려 후기의 장정리 석조여래입상과도(보물 제615호) 유사하여 시대 양식과 지역적 특색이 함께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사진 2). 또한 나발이 표현된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肉髻)와 함께 중앙에 계주(髻珠)가 장식되었다. 불상의 계주 장식은 중국 당대에 성립되어 유행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후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 불상에서 크게 유행한 불상 형식이다.

법의는 양쪽 어깨를 덮고 있는 통견으로 입었다. 왼쪽 가슴 위에 장식된 금구(金具)와 수평으로 입은 내의, 띠매듭 등은 고려 후기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오른쪽 어깨 위를 덮은 둥근 형태의 옷자락과 왼쪽 어깨에 표현된 Ω자 모양의 옷주름 역시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이다. 특히 가슴 위에 표현된 젖가슴과 배 위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옷깃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의 불상에 나타나는 요소이다. 두 손은 아미타불의 상징인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는데 무릎 위에서 두 손을 서로 포갠 채 엄지손가락을 살짝 맞대고 있다. 고려시대의 아미타불상은 대개 가슴 앞에서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맞대는 설법인(또는 전법륜인)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선정인의 아미타불상은 보기 드물다.

백련사의 철조아미타불좌상은 강화도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남아 있는 고려 후기의 불상으로 자료적 가치가 있으며 지역적 특색이 반영되어 토착화된 불상의 조형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31호 / 2018년 3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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