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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외면 받는다

한국불교사에서 근현대는 500년 억불의 시대를 빠져나와 불교 위상을 다시 세우는 험난한 시기였다. 수많은 선지식이 등장해 교단을 세우고, 교학과 수행체계를 복원했으며, 대중 속에 뛰어 불교의 이상을 실천하려 애썼다. 그들이 있었기에 밑바닥에 전전하던 불교가 짧은 시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의 하나로 다시 설 수 있었다.

재가선지식들 보살에 주목
일상서 보살로 살려고 노력
보살 등질수록 정토도 요원

선지식들 중에는 걸출한 재가불자도 많았다. 20세기 중후반 활동했던 불연 이기영(1922∼1996), 혜안 서경수(1925~1986), 병고 고익진(1934~1988) 교수도 한국불교의 변화를 이끈 주역이다. 이들이 공부한 곳은 유럽, 인도, 국내 등 모두 달랐지만 이 땅에 불교를 정착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한생을 살았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연구와 교육활동을 하면서도 신문과 잡지에 끊임없이 불교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일반 지식인들과의 교류로 불교 이미지를 높였으며, 대중들과 더불어 불교학적 삶을 현실에 적용하고 직접 닦아나가려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불교학과 신행의 일치를 적극 표방했다. 특히 놀랍게도 대승불교의 핵심이 보살사상에 있으며, 한국불교가 지향해야 할 좌표로 보았다는 점에서 동일했다. 한국불교연구원을 창립한 이기영 교수는 그의 제자인 정호영 충북대 명예교수가 ‘위대한 보살, 위대한 수행자’라고 찬탄했듯 귀일심원(歸一心源)과 요익중생(饒益衆生)이라는 서원을 세우고, 스스로 보살이 되어 나아가려 했다. 그가 원효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도 중생을 저버리지 않는 보살의 비원을 가졌던 인물이 원효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기영 교수와 함께 한국불교연구원을 창설하고 불교신문 주필 등을 역임한 서경수 교수도 늘 보살사상을 강조하고 관련 글도 많이 남겼다. ‘보살의 길은 중생을 위한 길’이라던 서 교수는 우리가 보살임을 자각하고 이 사회와 인류를 위한 이타의 길을 걸어가는 데 우리의 존재 의의가 있다고 숱하게 역설했다.

평생 병마와 싸우면서도 의연한 진리탐구와 미답의 학문세계를 개척해온 고익진 교수도 보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저마다 깨달음을 구하고 생활 속에서 불교를 실천해가는 것을 보살로 여겼던 그는 1981년 봄에 창립한 모임 이름도 일승보살회로 지었다. 그는 ‘한줄기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는 보살들의 모임’을 통해 함께 구도와 신행활동을 펼치며 보살의 길을 걸어갔다.

▲ 이재형 국장

 

이들 재가 선지식은 깨달음이란 안락한 세계[열반]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삶 속에서 실현돼야 할 것으로 믿었다.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지 못하고 자비심 없는 마음에서 진리를 보지 못한다’는 대승경전 구절처럼 뭇 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과 구제의 서원이 있어야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들은 ‘깨달음과 중생제도를 위해 전력을 다해 노력하는 이’가 바로 보살로서, 중생계를 살아가는 모든 불자들의 영원한 이정표라고 여겼다.

지금은 보살이 외면받는 시대다. 대승불교권인 한국에서조차 보살은 여신도를 일컫는 용어로 더 많이 사용된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보살의 실천보다 붓다의 완성만 부러워하는 모양새다. 보살이 불자들의 삶에서 멀어지면서 불교의 이상도, 정토도 더욱 요원해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32호 / 2018년 3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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