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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와 재산관리인

기자명 심원 스님

현재 한국불교는 주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주지직을 맡는 순간 막중한 권한이 주어지고, 신도나 외부인도 주지스님을 사찰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스님은 주지스님과 ‘주지 아닌 스님’, 두 종류의 스님만이 있다는 풍자 섞인 말까지 생겨났다.

주지(住持)라는 용어는 본래 단순히 ‘머물다’는 의미의 술어로 경전에 등장하여(‘一切如來 光嚴住持’ ‘云何思惟 云何住持’ ‘원각경’) 부처님 가르침이 세상에 머물도록 지킨다는 의미로 강화되고(‘教化成熟 眾生方便 分布舍利 住持教法 皆悉不同’, ‘화엄경’), 중국에서 선종이 번성하면서 총림의 중요한 승직(僧職)을 지칭하는 명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주지가 승직으로 등장한 최초 문헌인 ‘백장청규’의 ‘주지장(住持章)’을 보면, 주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는 물론 신임 주지 선출과 취임과정에 이르기까지 주지와 관련된 제반 사항들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 장로자각(長蘆慈覺) 선사가 쓴 ‘귀경문(龜鏡文)’에서는 “대중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열어 보여주어야 하는 까닭에 장로[주지]가 있고” 라고 하여 여러 소임 중에 주지를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지의 위격(位格)이다. 주지는 장로(長老)였다. 석존 때 사리불존자나 수보리존자가 법랍이 높고 덕망을 갖추었기 때문에 장로로서 존경받은 것처럼, 주지도 그런 지위였다. 사찰의 최고 어른을 주지라 하였고 후대에 와서는 방장으로도 불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스님들을 이판승(理判僧)·사판승(事判僧)으로 구분하면서 주지는 사판을 대표하는 소임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주지가 소임에서 물러나 공부인으로 돌아가 정진하면 이판승으로 불리듯이 경계가 고정된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주지는 수행대중을 외호하는 책임자로서, 본인이 수행할 때 다른 주지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주는 봉사직이었다. 승가라는 수행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소임으로 결코 대중에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불교계 현실에서 주지는 봉사직을 훨씬 넘어서 있다. 아무리 대중이 우선이라 우겨도 주지가 최고다. 사찰을 대표하고 사찰 운영의 결정권자이다. 이처럼 안팎으로 주어진 역할이 막중하다 보니 어느 결엔가 권력형 소임자가 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주지직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이 세간의 입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젠 ‘머물 주’자 주지(住持)가 아니라 ‘주인 주’자 주지(主持)로 한자를 고쳐야 할 판이다.

그런데 더욱 난감한 것은 재단법인으로 등록된 사찰의 주지는 법적으로 ‘재산관리인’이라 불린다는 사실이다. 재산관리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재산으로서의 사찰’을 관리하는 것이다. 재단법인의 관점에서는 행정관리에 능하고, 사찰재정을 부유하게 하며, 번듯한 불사를 하는 이가 훌륭한 주지이다. 승려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은 뒷전이다.

살펴보면, 주지라는 말의 의미 변천은 매우 극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처님 가르침이 세상에 머물 수 있도록 지킨다는 ‘화엄경’의 ‘주지교법’에서 시작하여, ‘백장청규’의 만인의 존경을 받는 ‘장로주지’에서 영예를 누리다가, 어느새 ‘사판주지’로 방향이 바뀌고, 급기야 세속적 냄새가 짙게 배인 ‘재산관리인’이 된 것이다.

삼보정재를 잘 운용하여 대중과 사회를 이익 되게 하는 재산관리 그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다. 다만 재산관리라는 것이 주지가 해야 할 여러 직무 중에 하나여야지 온전히 재산관리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인간은 자기 삶의 태도를 규정해 간다. 하지만 주지된 자가 외호대중의 자세와 출가의 본분사를 망각하지 않는다면 재산관리인으로 전락하는 낭패는 없을 것이다. 주지가 주지다울 때 종단 안팎의 갈등이 줄어들고, 스님들이 스승으로서 세간의 존경을 받으며, 부처님 가르침이 이 땅에 오래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daum.net
 

[1432호 / 2018년 3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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