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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사리 같은 각성으로 엮은 삶을 보다

  • 불서
  • 입력 2018.03.19 16:44
  • 수정 2018.03.2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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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 한승원 지음 / 불광출판사

▲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바닷가에 섬세하지도 정교하지도 못한 작가실을 짓고 ‘토굴’이라 명명한 것은 스님들처럼 수도하듯이 살겠다는 것이다. 수도하듯이 산다는 것은 나를 그 토굴 속에 가두고 바깥바람으로부터 격리시키겠다는 것이다. 가둔다는 것은 그 속에서 나를 양생한다는 것이다. 양생은 노자적인 순리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하면서만 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전남 장흥에 토굴하나 마련하고 이처럼 글 바다에 들어가 수많은 작품을 건져 올린 작가 한승원이 등단 이후 50여 년 동안 켜켜이 쌓아 올렸던 산문 가운데 자기 인생을 함축한 글만 골라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에 담았다. 해마다 장편소설·중단편·시집 등을 펴내온 작가 일생이 담긴 책은 그의 성실함과 치열함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책은 그의 이야기이기에 앞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주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작가는 지난 세월 원효, 추사, 초의, 다산 등 역사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면서 만난 역사 속 인물들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침을 얻었다. 특히 원효 스님과 만나면서 화쟁·일심·무애의 삶을 배웠다.

그 중에서도 원효 스님이 쓴 ‘판비량론’에 ‘부처님 말인가를 따지지 말고 이 말이 진리인가를 따져라’라고 한 대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부처님 말인가 여부만을 따지는 것은 교조주의적이고 이념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원효 스님은 진리 여부를 따짐으로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보라고 경책했던 것이다. “원효 스님의 화쟁은 진리로 쟁론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화쟁의 끝”이라고 인식한 작가는 우리 삶도 이처럼 진리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 작가 한승원이 자신의 생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를 펴냈다. 수행자의 구도적 삶을 닮은 ‘해산토굴’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렇게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온 끝에 마주한 이가 석가모니부처님이었고, 인생목표로 삼았던 붓다 일대기를 새롭게 엮은 ‘사람의 맨발’을 내 놓은 후로는 그것이 고스란히 자신의 삶이 됐다. 그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은 인간의 오만이 아니라 인간이 절대고독자임을 뜻하고, 정글 같은 세상 속에 싯다르타의 맨발은 장엄한 출가정신의 표상”이라며 “부처님이 입멸 전 아난에게 스스로 등불을 켜고 나가라고 한 말씀은 절대고독자인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일러준 답”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글 쓰는 삶은 깨달음을 구하는 길이었고 중생과 함께 하는 길이면서 자기 등불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책을 선보였음에도 이 책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더 특별한 것은 그러한 삶의 면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죽을 만큼 심했던 독감을 3개월이나 앓으며 유언처럼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촛불에게서 배워라’ ‘이념이나 정의가 아니라 진리를 위해 글을 써라’ 등 9편이 부록으로 더해졌다. 노 작가가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의 호 ‘해산(海山)’은 바닷가에 있는 가시적인 산이 아니다. 짙푸른 심해 속에 암초처럼 발달한 숨어 있는 산이다. 바다 속에 내(산)가 있고, 나는 날마다 꾸준히 그 나(산)를 탐색하며 오르곤 하는 것인데, 그 등산으로 인하여 부처님의 사리 같은 각성이 나의 모래밭에 깔리고 나는 그것들을 헤아리며 삶을 엮는다.”

땅끝 바닷가 ‘해산토굴’에 살면서 풀 베고 책 읽고 글 쓰고 명상하는 작가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부처님 일대기 쓰기를 인생목표로 삼아 수행하는 스님처럼 살아온 그의 삶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제 당신 자신을 성찰해보라”는 무언의 권유를 받아들여 ‘나’를 돌아보는 자신을 보게 된다. 1만6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32호 / 2018년 3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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