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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박경종의 입학식

기자명 신현득

동심 가득했던 전쟁 속 입학식

3월은 입학의 계절이다. 학교마다 교문을 열고 입학생을 맞는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입학날이 가장 즐겁다. 이 날은 입학하는 어린이의 기쁨, 학부모의 기쁨, 가족의 기쁨으로 온 집안이 설레고 이 기쁨이 학교로 옮겨진다. 그런데, 옛날의 입학날은 어떠했을까? 6·25 때도 공부는 계속되었고, 입학날은 즐거웠다고 한다. 그 무렵의 입학날을 노래한 동시 한 편을 놓고, 오늘의 입학날과 견주어보기로 하자. 당시의 입학날은 초가을 9월이었다.

피난 시절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본 입학식 풍경
서울·이북에서 온 아이들
고향 이야기 살뜰히 담아

입 학 날

오늘은 입학날
학교 길에 꽃 폈다.

새 나라의 꽃봉오리
옹기종기 가안다.

서울서 피난 온
순이도 가아고

이북서 피난 온
돌이도 가아고

서울 내기 순이는
서울 얘기 하아고

이북 내기 돌이는
이북 얘기 하아고

오순도순 어는 새
참새동무 되었다.

- 박경종 동시집 ‘꽃밭’(1954)

6·25 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고, 피난민이 여기로 모여들었다. 지은이가 임시수도 부산에서 쓴 작품이다. 지금도 입학날이 즐거운 것처럼 그때도 입학날은 즐거웠다. 입학하는 어린이 모두 예쁜 모습에다 형편대로 예쁜 옷을 차려 입고 학교에 가고 있다. 그래서 이들 어린이가 학교길의 꽃이다. 옹기종기 걸어가는 새나라의 꽃봉오리다. 꽃봉오리들 속에는 서울에서 피난 온 순이도 있고, 이북에서 피난 온 돌이도 있다. 이들을 서울내기, 이북내기라 부르고 있다. ‘서울 출생’ ‘이북 출생’이라는 뜻이다. 서울 내기 순이가 서울 얘기를 한다. 이북 내기 돌이가 이북 얘기를 한다. 그러는 사이에 참새동무가 된다. 큰 전쟁판에서도 입학날은 즐거웠던 것이다.

그러나, 6·25때의 하교는 어려움이 많았다. 교실을 군인 아저씨들에게 내어주고, 어린이들은 선생님을 따라 가서 야외수업을 했다. 학교바깥의 냇둑이나 나무 그늘이 교실이 돼 주었다. 이런 불편한 자리에서 교과서를 읽고, 글을 쓰고, 노래를 배우고, 달리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공부와 놀이는 즐거웠다. 대포 탄환껍질을 주워다가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고 학교종으로 쓰기도 했다.

햇빛이 심해도 공부에 지장이 됐지만 비가 오는 때는 가까운 집 처마 밑으로 달려가 비를 피했다. 선생님도 처마 밑으로 피했지만 어린이들을 살피느라 옷이 함빡 젖었다. 이런 날은 이것으로 공부를 마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동심은 즐거웠다. 집에 가면 온 가족이 피난살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군대에 간 형이나 삼촌, 걱정을 한다. 거기서 이어지는 것이 나라 걱정이다. 이렇게 해서 당시의 어린이들은 마음속에 ‘애국’ 두 글자를 지니고 지냈다. 이런 모든 사실이 이때에 쓴 아동문학 작품에 담겨서 전한다.

시의 작자 박경종(朴京鍾, 1916~2006)시인은 동요 ‘초록 바다’(이계석 곡)의 주인공이며 함남 홍원 출신이다. 1933년 조선중앙일보에 동시 ‘왜가리’가 뽑히고부터 90세로 세상을 마칠 때까지 동시 창작을 계속해서, 17권의 동시집을 남겼다. 6·25 때에 월남,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하며 이 작품을 썼다. 박경종 시인은 일제에 최후까지 버티던 어린이 잡지 ‘아이생활’을 구하려고 재산을 내놓은 일이 있다. 이러한 독립정신이 동요 ‘초록바다’와 함께 박경종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32호 / 2018년 3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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