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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손빈과 방연의 경쟁

기자명 김정빈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으리라”

▲ 그림=근호

손빈(孫臏)은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孫武)의 후손으로서 ‘손빈병법’을 남긴 사람이다. 젊었을 때, 그는 귀곡자(鬼谷子)라는 스승에게서 학문을 배웠는데, 거기에서 방연(龐涓)과 사귀었다. 손빈과 방연은 의기투합하여 의형제를 맺었는데, 손빈의 나이가 많았으므로 손빈이 방연의 형이 되었다.

손빈과 방연 동문수학했지만
배움 풀어쓰는 방법 극과 극
결국 전쟁서 삶과 죽음 갈려
경쟁과 투쟁 중심의 삶에서
조화와 협력의 삶 변화필요

두 사람 중 방연이 먼저 세상으로 나갔다. 그는 자신의 출신국인 위나라의 혜왕에게 병법의 요령을 설파하여 중용된 뒤 그는 여러 차례 공을 세워 대장이 되었다.

방연은 손빈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신과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 제안에는 무서운 계략이 숨어 있었다. 손빈이 언젠가는 자신의 경쟁자가 되리라는 것과 그와 경쟁할 경우 자신에게는 승산이 없으리라 생각한 방연은 손빈이라는 인재의 싹을 잘라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방연은 손빈에게 죄를 씌워 종지뼈를 도려내는 형벌을 받게 하였다. 그제서야 방연의 본심을 알아챈 손빈은 짐짓 미친 체를 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감옥에서 나온 손빈은 구걸을 하며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때, 제나라의 장수 전기가 정치적 교섭을 하기 위해 위나라를 방문했다. 그가 위나라를 방문한 데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소문을 통해 손빈의 탁월한 재능에 대해 알고 있었던 제나라 사람들은 손빈을 중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전기는 위나라 사람들 몰래 손빈을 찾아내어 수레에 태워 제나라로 데려갔다.

어느 날, 전기는 제나라 공자들과 돈을 걸어 세 번 겨루어 두 번 이상 이기는 쪽이 돈을 차지하는 마차 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손빈은 전기와 공자들의 말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자신에게 경기에서 이기는 비법이 있다며 전기에게 왕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마차 경기를 열 것을 권했다. 경기에 앞서 손빈이 말했다.

“장군의 말과 왕공자들의 말의 평균적인 능력치는 서로 엇비슷합니다. 왕공자들은 상, 중, 하 등급의 순서로 말을 경기에 내보냅니다. 그러니 장군은 먼저 하등의 말을 내보내어 왕공자들의 상등의 말과 겨루십시오. 그러면 지겠지요. 그러나 그다음엔 상등의 말을 내보내어 왕공자들의 중등의 말과 대적시키고, 그다음엔 중등의 말을 내보내시어 왕공자들의 하등의 말과 대적시키면 두 번을 이길 수 있습니다.”

전기는 그에게서 얻은 요령을 이용해 승리했다. 제의 위왕은 전에는 이기지 못하던 전기가 이번에는 이긴 것을 이상하게 여겨 까닭을 물었고, 전기는 그것이 손빈의 계책임을 아뢰었다.

손빈의 능력을 알아본 위왕은 손빈을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손빈은 형벌 받은 몸임을 들어 사양하고 전기의 군사(軍師)가 되고 싶다고 청하여 그 직위를 맡았다. 그가 장군이 되지 않은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손빈은 방연에게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렸던 것이다.

얼마 뒤에 방연은 위의 혜왕을 설득하여 조나라를 공격했다. 8만 명의 위나라 병사가 조나라로 쇄도하자 조왕은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으며, 제왕은 이 일을 전기에게 일임했다. 손빈이 전기에게 말했다.

“조나라가 위급하다고 해서 반드시 조나라로 군대를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상대의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일은 저절로 풀리게 됩니다. 지금 위나라 수도가 비었으니 위나라를 공격해야 합니다.”

위위구조(圍魏救趙), 즉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원한다’는 고사성어로 알려진 이 방법을 사용하여 제나라 군대는 위나라를 공격했고, 다급해진 위왕은 방연에게 회군을 명령했다. 방연은 부대를 이끌고 황급히 본국으로 돌아가던 중에 전기 군의 습격을 받아 많은 병사를 잃었다.

서기 341년, 위나라와 조나라가 연합하여 한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가 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손빈은 전기와 함께 출정하여 다시 한번 방연과 겨루었다. 제나라 군대는 짐짓 후퇴하면서 날마다 밥 짓는 아궁이 수를 줄여나갔다. 그것을 보고 방연은 아궁이 수가 줄어든 것은 제나라 병사들이 날마다 탈영을 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보병의 엄호를 받지 않은 상태로 기병만을 동원하여 황급히 손빈 군을 추격했다.

어스름한 초저녁, 방연이 이끄는 소수의 병력이 마릉이라는 험지에 이르렀을 때 한 병사가 하얗게 표피가 깎여 있는 나무를 발견했다. 등불을 켜고 살펴보니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으리라.”

등불이 켜지기를 기다려 매복하고 있던 손빈 군의 궁노수들이 방연 군을 향해 일제히 화살을 퍼부었다. 방연은 “드디어 더벅머리 아이놈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들었구나!”라고 외친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손빈과 방연의 스승 귀곡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책 ‘귀곡자’에는 상대의 심리에 맞추어 그의 신임을 얻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든가, 기회를 틈타 상대의 약점을 장악해서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둬야 한다든가, 상대를 잘 위무해 그의 진심을 끌어내 확인함으로써 상황을 추측하고 파악해서 책략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몸을 잘 써야 자신을 보호하고 남을 공격할 수 있기에 무술을 연마하고, 무술을 연마하는 자를 지배할 수 있기에 병법을 공부한다. 손빈과 방연은 같은 목적을 갖고 귀곡자를 사사했지만 동학을 대함에 있어서는 서로 달랐다. 방연은 손빈을 경쟁자 내지 적으로 보아 해하려 했다. 그에 응하여 손빈은 방연보다 더 높은 계책을 써서 그를 죽였다.

같은 스승에게서 배웠지만 소진과 장의, 손빈과 방연은 이렇듯 서로 달랐다. 그들의 스승 귀곡자는 삶을 이익 중심, 경쟁 중심, 투쟁 중심으로 보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소진과 장의, 손빈과 방연은 동학이면서도 경쟁자, 또는 적이 되었다.

불경은 “같은 물이지만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고 설한다. 한 걸음 나아가, 소가 마시느냐 뱀이 마시느냐와 함께 어떤 물을 마실 것인가도 중요하다. 맑은 물은 몸을 돕지만 흙탕물은 배탈을 일으킨다. 어떤 스승을 모실 것인가, 그 스승이 가르치는 바가 맑은가 흐린가, 그 사상이 경쟁 중심인가 투쟁중심인가 조화 중심인가, 그것들의 관계는 어디에서 갈리고 어디에서 만나는가 등을 숙고하는 것은 스승을 모시고 배우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덕목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32호 / 2018년 3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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