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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이승만과 닉슨 경국사 방문

기자명 이병두

구둣발로 사찰 방에 든 이승만과 닉슨

▲ 정릉 경국사를 찾은 대통령 이승만과 미국 부통령 리처드 닉슨을 공손하게 맞이한 주지 보현 스님(1953. 11. 13.)

두 인물이 코트와 구두를 벗지 않은 채로 그리고 한 사람은 모자를 쓴 채로 의자에 앉아 있는데 주지 스님(보경 보현, 寶鏡普現)은 그 앞에서 공손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이 사진은 1953년 11월13일 대통령 이승만과 바로 전날 방한한 미국 부통령 닉슨이 서울 정릉동 경국사를 찾았을 때의 모습이다. 두 사람이 한국과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이고 그들의 몸에 배어있는 서양식 매너로는 구두를 신고 방에 들어가는 것이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장면을 보면서 기분이 씁쓸하다. 요즈음 같으면 스님들이 이런 식으로 맞이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혹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항의가 빗발칠 것이다.

전제군주 시절 왕같은 태도에
공손한 자세를 취한 스님 모습
잘 보이려는 심정 담겨 씁쓸
닉슨 “가장 인상적”이라 회고

경국사뿐 아니라 1950년대에 이승만이 논산 관촉사 등을 찾았을 때의 사진을 보아도 마치 전제군주 시절의 왕처럼 군림하는 태도가 분명할 정도로 이 시절 불교와 정부의 관계가 정부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이처럼 공손하게 맞이하는 데에는 비구와 대처 사이의 갈등이 깊어져 화합 가능성이 낮아진 상황에서 정부 인사, 그 중에서도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이 사진에 담겨있다.

1953년 7월27일 유엔군(실질적으로 미군)과 북한군 ‧ 중국군 사이에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3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전쟁이 원점에서 어정쩡하게 마무리되었다. 압록강까지 올라갔다가 중국군(당시 중공군으로 호칭)의 대규모 참전으로 다시 밀려 내려와 승산 없는 전쟁을 이어가는 미국이 정전협상을 서둘렀지만, 아무런 군사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미국의 지원 없어도 전쟁을 하겠다”면서 막무가내 버티는 이승만 때문에 골치 아픈 미국이 이승만을 달래려고 닉슨 방한을 추진한 것이다.

중요한 손님을 맞은 한국 정부가 대대적인 환영 행사에 이어 그를 경국사로 안내한 것인데, 3박4일의 바쁜 일정의 닉슨을 경국사로 데리고 간 이유가 무엇일까.

방한 첫날인 12일 이승만과의 회동은 서로 입장을 내세우며 팽팽하게 진행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승만의 입장에서는 미국 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어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 다음날 오전에 중앙청 광장에서 수만 명을 동원한 ‘우리의 은인 미국 부통령 닉슨 환영대회'를 열어 좋은 인상을 주었다고 하지만 이런 환영은 다른 나라에서도 받을 수 있는 대접이었다.

그러나 경국사 방문은 그에게 색다른 경험이었음은 훗날 회고록에서 “경국사에 갔던 경험이 한국 방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데에서도 확인된다. 이승만이 “서울 근교의 가장 정리 잘된 사찰을 찾아 닉슨을 구경시켜 주라”는 지시를 했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서로 맞부딪히고 있는 회담장을 떠나 함께 조용한 절을 찾아 여유를 가지는 것은 외교 협상의 기본 전술일지도 모른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방한한 외국 정상들이 월정사를 찾아와 한국 사찰의 아름다움과 살아 숨 쉬는 불교문화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았다. 1953년 경국사를 방문한 닉슨처럼, 이번에 월정사를 찾은 정상들도 공식 회담 못지않게 이 경험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이처럼 과거 사찰과 스님들이 비공식 문화 외교에서 중요 역할을 하였고 앞으로도 그리 해주길 기대한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32호 / 2018년 3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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