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지는 스트레스’ 알아차림으로 뿌리부터 해결
‘만들어지는 스트레스’ 알아차림으로 뿌리부터 해결
  • 정리=남수연 기자
  • 승인 2018.03.2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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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명상심리상담학회 월례강연회

▲ 사단법인 한국명상심리상담학회가 3월22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개최한 ‘스트레스 관리와 알아차림 명상' 강의에는 300여명의 수강생이 몰렸다.

 

 

▲ 김정호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
스트레스의 이해와 관리

스트레스 주고 받는 것 아닌
내면 욕구가 만들어 내는 것
내 안의 여러 ‘나’ 이해하고
부정적 내 모습도 인정해야

흔히 스트레스 받는다, 스트레스 준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스트레스의 절반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어떤 부분과 관련해 스트레스가 만들어지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면의 어떤 것과 관련돼 스트레스가 생성되는가를 이해한다면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도우미가 되기도 한다.

원시시대 스트레스는 생존의 문제였다. 이때의 스트레스는 맹수로부터 도망가거나 싸우는데 최적화된 상태를 만들어 준다.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의 스트레스는 정신적인 문제다. 오늘날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서 생긴다. 이를 구성주의라고 한다. 환경으로 대표되는 ‘밖조건’, 나로 대표되는 ‘안조건’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러한 경험은 ‘고’와 ‘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스트레스 혹은 웰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스트레스나 웰빙은 모두 동기가 없으면 생기지 않는다. 동기를 쉬운 말로 하면 욕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기의 어떤 상태가 스트레스일까. 동기가 좌절된 상태, 혹은 좌절이 예상되는 상태도 스트레스가 된다. 어떤 때는 동기 좌절보다 좌절 예상이 더 큰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동기 충족, 혹은 충족 예상 상태가 웰빙이다.

이것을 머리로 알 수는 있지만 실천하고 체화되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의 어떤 동기가 스트레스를 불러오는지 깨닫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욕구가 개입하지 않은 스트레스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늘 밖을 탓한다. 문제는 안에 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나의 욕구가 올바른 욕구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내가 경험하는 스트레스가 마땅한 것인지, 내가 갖고 있는 욕구는 내 욕구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있다. 내 욕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부모, 선생님, 사회의 욕구였다는 뜻이다. 스트레스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스트레스 상황을 뒤집어봐서 그 동기가 바른 것인가, 진짜 내 동기인기를 돌아봐야 한다.

구성주의에 대한 체화는 매일 경험하는 스트레스를 성장의 기회로 만들어 준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가족 등 가까운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사회’ 관점이다. 우리의 마음은 각자의 여러 ‘나’가 모여 있는 사회라는 뜻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의 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펴보면 나는 여러 개의 나로 구성 돼 있다. 마치 사회와 같다. 불안할 때, 기쁠 때, 분노할 때의 나는 모두 다르다. 나의 하루를 비디오를 찍어보면 마치 다중인격자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개의 나로 구성돼 있는 것이 건강한 상태다. 여러 나로 돼 있음을 인정하면 유익한 점이 많다.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부정적인 측면은 여러 개의 나 가운데 하나, N분의 1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나도 내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억누르려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억눌리는 부분이 부작용을 일으킨다.

따라서 솔직해져야 한다. 부정적인 측면 또한 여러 나 가운데 하나임을 안다면 인정하고 알아차리기가 쉬워진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신을 책망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우울해진다. 이는 ‘잡아함경’에서 말하는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이다. 나쁜 생각을 한다고 놀라고, 죄책감을 느끼고, 자기를 탓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다.

이 여러 개의 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늘 변화한다. 다만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자신의 여러 측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볼 수 있는 힘, 즉 인내력이 커질 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다양한 나 가운데 좋은 것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문제가 되는 나를 억지로 부정하거나 고칠 필요는 없다. 그보다 건강하고 긍정적인 부분에 힘을 쏟으면 부정적인 부분은 저절로 줄어들게 된다.


 

 

▲ 인경 스님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알아차림 명상의 이해

초기불교에선 알아차림 제시
유식불교는 내면의 기억으로
알아차림의 영역·대상 확장
선불교는 청정 불성으로 접근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안으로는 명상, 밖으로는 소통이 필요하다. 불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이 이뤄져 왔다.

초기불교에서는 압박, 강박을 느낄 때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알아차림(사띠)이 제시됐다. 현재의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신(身), 수(受), 심(心,) 법(法)에 대한 관찰을 제시했다. 몸 관찰의 첫째는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이다.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예상과 판단을 멈추는 것이 초기불교 명상의 제1원리이자 오늘날 우리에겐 스트레스 관리의 제1전략이기도 하다. 호흡에 집중할 때는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아차림 할 뿐 다른 것이 필요 없다. 스트레스는 그 순간에 다른 생각, 예상, 걱정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것을 멈추고 오직 관찰하는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불교의 첫 번째 전략이다.

두 번째는 유식불교다. 유식에서는 초기불교에서 말한 알아차림, 사띠를 ‘염(念)’이라 표현했다. 예를 들어 염불은 부처님을 이 순간에 불러내서 체험하는 것이다. 다른 생각, 판단을 멈추고 오직 부처님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미 알아차림 수행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식에서는 세속의 일도 알아차리는 것으로 사띠를 확장했다. 내가 경험했던 것, 내면의 제8식, 아뢰야식에 들어있는 정보를 꺼내서 현재의 순간으로 환기,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 안에 어떤 경험, 기억이 억압돼 있고 그림자로 있는지를 알아차려서 표면으로 떠올려야 하는데 이것을 꺼내서 알아차리고 밖으로 끄집어내고 이야기하는 것을 ‘사띠한다’ ‘알아차림 한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것을 영상관법으로 개념화 했다. 사진을 찍어 놓는 것과 같이 우리는 특별한 경험을 이미지로 저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창피하고 기억하기 싫은 것은 더 깊이 집어넣고, 좋고 자랑스러운 것은 꺼내 놓는다.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나 자신만이 알고 있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트라우마, 깊숙이 숨겨놓은 것을 꺼내서 그 이미지를 코끝에 걸어놓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좋은 것을 떠올리면 몸이 좋아하고, 나쁜 기억을 떠올리면 몸이 괴로워한다. 그런데 스트레스 관리전략은 나쁜 기억을 떠올려서 그 괴로움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소통의 연습이다. 슬펐던, 아팠던 경험을 준 대상을 떠올리고 그와 대화하는 것이다.

기억을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려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다. 기쁨도 온전히, 슬픔도 온전히 느끼는 것은 인생을 윤택하게 만들고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이것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두 번째 전략이기도 하다.

세 번째 전략은 마음 청정, 불성의 전략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청정하다. 보석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것이 불성이다. 원래 스트레스가 없는 존재다.

선종에서는 사띠를 불성의 작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알아차림은 나의 청정성, 불성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내가 알아차리는 순간 나의 불성은 발현한다. 현실의 고통은 인연에 따라 오고 가는 결과일 뿐, 나는 본래 청정하고 물들지 않은 존재다. 스트레스의 작용은 불성이 발현하는 순간 사라진다.

간화선을 하기 전에 올바른 알아차림이 있어야 한다. 우울할 때 우울해 하는 놈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왜 그런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고 나서는 우울해 하는 것이 참 내가 아니라면 무엇이 나인가를 찾아야 한다. 나는 우울에 물들지 않고 청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관점을 전환시킴으로써 우울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가 많지만 우리는 이미 수백 년 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명상을 해왔다. 호흡으로 돌아와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 첫 번째 전략이고, 내면에 억압돼 있는 상처를 코끝에 꺼내 충분히 경험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두 번째 전략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부족함이 없음을 자각하고 무엇이 진짜 나인가라는 질문, 즉 화두를 던지는 순간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433호 / 2018년 3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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