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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오의 ‘한산도(寒山圖)’

기자명 김영욱

자연은 한 권의 경전과 같다네

▲ 가오 作 ‘한산도(寒山圖)’, 14세기 전반, 종이에 먹, 98.6×33.5㎝, 개인 소장(출처: ‘日本美術絵画全集1: 可翁/明兆’, 1977년).
碧澗泉水淸(벽간천수청)
寒山月華白(한산월화백)
黙知神自明(묵지신자명)
觀空境逾寂(관공경유적)

‘푸른 시내에 샘물은 맑고 차디찬 산에 달빛은 희네. 묵묵히 앎에 정신은 절로 밝아오고 공을 바라보매 경계 더욱 고요하네.’ (한산(寒山)의 ‘한산자시집(寒山子詩集)’에서)

소나무 사이 텅빈 공간
뒷짐 지고 바라보는 한산
천진한 미소 깨달음 상징

일본의 선승 가오(可翁, 14세기 전반 활동)가 그린 ‘한산도’를 보고 있노라면 청량한 기운이 온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듯하다. 소나무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 따라 기분 좋은 서늘함이 귀와 목덜미를 간지럽히며 발끝까지 와닿는다. 순간 산골의 물소리며 새소리며 온갖 산의 소리가 허공에 떠돈다. 맑은 바람의 유유한 음률에 자연스레 마음이 탁 트이니 마냥 활연하기만 하다.

한산이 뒷짐 지고 긴 소맷자락을 늘어뜨린 채 초연히 서 있다. 소나무 한 그루와 한산 사이에는 텅 빈 여백만이 가득하다. 그의 눈은 허공을 응시한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한산은 당나라 때 저장성 천태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전설상의 인물이다. 그는 한암에 은거하며 때때로 국청사로 내려가 친구인 습득(拾得)과 어울려 놀곤 했다. 절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유쾌한 듯 큰소리로 외치기도 하고 조용히 혼잣말하고 매번 혼자 웃기도 했다. 자작나무 껍질을 머리에 쓰고 너덜너덜해진 옷을 걸치고 나막신을 질질 끌고 있는 그의 행색과 언행은 사람들에게 ‘미치광이(風狂之士)’로 불릴 만했다. 번번이 승려들에게 붙잡혀서 욕을 듣고 매질을 당해 쫓겨났지만, 그때마다 가만히 멈추어 서서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다가 한암으로 돌아갔다.

행동은 기이하나 세속에 구애됨이 없었다. 읊조린 시들은 자연의 본질을 꿰뚫고 순리에 따랐다. 그는 천진난만하다. 언행에 꾸밈이 없고 마음 가는 대로 순수하게 행동하니, 자연 그대로이다. 순진한 자연이 천진한 한산의 큰 스승인 셈이다.

옛 시에 ‘도는 천지의 형체 있는 것 밖으로 통하고, 생각은 바람과 구름이 변하는 안으로 들어간다(道通天地有形外, 思入風雲變態中)’라는 구절이 있다. 만물을 조용히 바라보면 모든 것을 절로 얻는 법이다. 자연은 한 권의 경전과 같다. 해와 달, 바람과 구름, 산과 바다, 흙과 나무. 자연은 하나의 문자이자, 천지를 이루는 진리이다.

한산이 바라본 공허한 여백은 자연이다. 자신의 마음을 열어 자연을 새겨 담고 그 안의 진리를 깨달았다. 그것은 오롯이 한산만의 경전이요, 한산만의 깨우침인 것이다. 그 깨달음에 그는 웃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속세의 시간 속에서 자연의 문자를 통해 천지의 경전을 읽을 수 있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오직 자연의 천진함을 바라볼 수 있어야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아가 자연의 고요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마음속 편안한 적정(寂靜)의 울림을 들을 수 있는 법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33호 / 2018년 3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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