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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라테 발전 주역은 조선의 대장경”

  • 교학
  • 입력 2018.03.27 22:15
  • 수정 2018.03.28 13:57
  • 댓글 6

▲ 류큐 가라테 수행자. 출처=오키나와 관광 홈페이지.
일본 오키나와에서 시작된 가라테(空手道)는 현재 180여 개국 6000만명이 선호하는 세계적인 무술로 2020년 도쿄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도 채택됐다. 이런 가운데 가라테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한반도에서 넘어간 고려대장경이라는 학설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장회식 태권도진흥재단 대외협력본부장은 김중헌 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와 함께 한일관계사학회가 발간하는 ‘한일관계사연구’ 제59집에 투고한 ‘류큐(오키나와) 가라테에 대한 한국불교의 영향’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장회식·김중헌 용인대 교수
‘한일관계사연구’에서 주장
세조 등 류쿠에 대장경 하사
류큐 곧 불교왕국으로 변모
사찰서 한문·가라테 등 교육
고려대장경 힘입어 큰 발전

일본 최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류큐(琉球)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오랜 세월 독립국가를 유지해왔다. 17세기 초 사츠마번의 침입으로 반식민지 상황에 놓이고 1879년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지역이다. 류큐는 식민지 이전까지 한국, 중국, 일본 등과 활발히 교역했던 국가로 외침이 잦다보니 자신을 보호할 무술도 자연스레 발달했다. 특히 류큐를 점령한 사츠마번이 칼 등 무기류 휴대를 금지시키면서 가라테가 자신의 보호 수단으로 크게 발전하게 됐다는 게 통설이다.

책임저자인 장회식 본부장은 류큐 가라테에서 발견되는 품새, 용어, 정신 등에 불교가 깊이 연관돼 있음에 주목했다. 가라테를 훈련하는 것을 ‘수행하다’, 가라테를 배우는 이를 ‘수행자’, 수행장소를 사찰의 동의어인 ‘도장(道場)’으로 부르고, 수련 후에 명상(좌선)하는 전통도 있었다. 또 품새 명칭으로 ‘108’, 그 절반인 ‘54’, 삼법인의 ‘3’ 등 불경에 자주 등장하는 숫자가 이용됐다.

▲ 나한상과 부처님 모습을 모방한 가라테 품새 동작.
뿐만 아니다. 부처님과 나한(羅漢)의 모습과 명칭을 모방한 품새 동작이 중요시 됐고, 가라테 첫 공인 유파인 고쥬류(剛柔流) 도장에서는 불교의 합장이 아예 동작의 기본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가라테(空手道)라는 이름에 ‘공(空)’이 들어간 것도 ‘반야심경’에서 유래됐고, 불교의 공사상은 가라테 교범에 반영돼 수련의 사상적 근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 본부장은 류큐가 일본의 완전한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사실상 불교국가였으며, 그 모든 것이 조선 건국 후 1세기 동안에 비롯됐음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류쿠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13세기 무렵이지만 불교가 정착된 것은 국왕이 직접 나서서 장려한 1450년부터 약 50년간이었다. 3개로 나뉘어 대립하던 류큐가 통일되면서 민심을 모을 필요가 있던 쇼타이큐왕은 불교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곧바로 인쇄문화의 최강국인 조선에 사신을 파견해 고려시대 간행된 팔만대장경 등을 정중하고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숭불임금이었던 세조가 1457년 류쿠 사신에게 대장경을 하사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어 세조 8년(1462)과 세조 13년(1467)에, 또 성종 2년(1471)과 성종 23년(1492)에도 대장경 등을 하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류큐는 1질이 6800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이뤄진 고려대장경 총 5질을 비롯해 다양한 조선의 불교문화를 자국에 들여올 수 있었다.

조선의 대장경을 하사받은 류큐는 불교왕국으로 변모했다. 1479년 류큐에 표류했다가 돌아온 김비의 등 견문록에도 “그들(류큐) 풍속은 승불(僧佛)을 성대하게 섬기며 일반 집이나 관청 모두 불상을 벌여 놓는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대장경을 봉안한 선종사찰은 13~14세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 역할을 담당하면서 조선의 경전을 중심으로 스님에게 글을 배우고 경전을 익히는 게 보편화 됐음도 보여준다.

▲ 고려대장경이 봉안된 적이 있는 안국선사(安國禪寺).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폭격으로 소실돼 전후 재건되었으나 고려대장경은 남아있지 않다. 장회식 태권도진흥재단 대외협력본부장 제공.
당시 류큐의 사찰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왕족이나 관리 자제들이 비밀스럽게 가라테를 배울 수 있는 지식의 산실이자 무술도장이었다. 오키나와 가라테가 “피압박 민족의 원한이 맺힌 무도”로 종종 표현되는 것처럼 사츠마번의 반식민 치하에서 가라테는 사찰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수행되고 발전을 거듭했다. 가라테 계보 문헌에 등장하는 최초기 가라테의 달인 4명 중 2명이 스님이었던 사실은 이러한 불교와의 깊은 관련성을 보여준다. 류큐 가라테를 일본 본토에 보급한 선구자인 후나코시 기친의 직계제자 히로니시 모토노부도 “근대 이전의 가라테 품새는 불교계에 의해 암암리에 전승되어 왔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결론적으로 가라테는 불교를 만나 기술적‧정신적 측면에서 크게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불교적인 요소도 자연스레 담기게 됐다는 것이다.

장회식 본부장은 “류큐 가라테는 불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서 그 시작은 이 지역 사찰에 고려대장경이 봉안되면서부터였다”며 “국내 불교학계도 한국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류큐 지역의 불교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34호 / 2018년 4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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