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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원 이사장 도덕적 목숨은 이미 사망선고”

  • 오피니언
  • 입력 2018.03.30 13:13
  • 수정 2018.04.02 15:36
  • 댓글 39

서재영 박사, 페북서 비판…“버틸수록 한국불교에 먹칠”

재단법인 선학원 법진 이사장 등 퇴진을 요구하며 선학원 한국근대불교기념관 2층 난간에서 1주일 동안 단식을 강행한 설봉(71) 스님이 결국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전국비구니회장 육문 스님 등 비구니회에서도 법진 이사장을 ‘범계승’이라 규탄하고 사태해결에 나선 가운데 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3월29일 페이스북에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제하의 글로 법진 이사장을 비판했다. 서재영 연구원 동의를 얻어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불교정화·수행전통 지키며
한국불교 뿌리였던 선학원
창립정신에 어긋난 성추문
유죄 선고 뒤 세간 알려져
이사장 미련 이제는 버려야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봄볕이 따사로운데 마음이 무거운 것은 하늘을 덮고 있는 미세먼지 때문이 아니다. 교계에서 들려오는 먹구름 같은 소식 때문에 화사한 봄날에도 마음은 오히려 어둡다.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선학원 이사장의 사퇴를 주장하며 단식정진을 하던 설봉 노스님이 건강악화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70을 넘긴 노 비구니 스님이 불편한 건물 난간에서 일주일씩이나 곡기를 끊고 선학원의 정상화를 요구하며 밤낮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선학원 이사장과 선학원 측은 끝내 책임 있는 대답을 내놓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선학원(禪學院)은 일제강점기 때 결혼하지 않은 비구승들이 한국불교의 수행가풍을 지키기 위해 설립한 승려단체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제(日帝)는 한국의 승려들을 일본승려와 같이 결혼하게 하였고, 그렇게 결혼한 대처승(帶妻僧)들이 한국불교의 주류가 되어 모든 사찰을 장악했다. 한국불교의 전통에 따라 결혼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하던 비구승들은 수행하며 머물 한 두 곳의 사찰조차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때 수행승들의 권익을 도모하고, 한국불교의 수행가풍을 지키기 위해 설립한 불교단체가 바로 선학원이다.

한국불교의 맑은 전통을 유지해 오던 선학원의 주축은 해방 이후 불교정화 운동과 조계종의 설립과정에서 핵심세력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선학원은 근대 한국불교에서 비구 종단이 재건될 수 있도록 한국불교의 전통을 지켜왔던 뿌리 같은 역할을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학원 하면 곧 비구들의 수행전통이 살아 숨 쉬는 도량이며, 평생 수행하며 살겠다는 비구들의 정신이 깃든 도량이며, 암울한 시대에도 깨달음을 향한 이상을 포기 하지 않았던 역사가 살아 있는 도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선학원의 정신과 전통에 어울리지 않는 성추문이 터져 나왔다. 선학원을 이끌고 있는 이사장이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뉴스는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 터져 나와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도덕성으로 지탱되는 종교계에서 이런 추문이 터져 나왔고, 계행(戒行)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비구스님이 성추문에 휩싸였으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은 당사자는 이사장직을 포함해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개인적으로도 잘못을 참회(懺悔)하며 조용히 근신하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진지 벌써 3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스님과 신도들이 항의집회를 열고 이사장의 용퇴를 촉구해 왔다. 여러 해를 넘기면서 선학원의 이미지 실추만 더해갈 뿐 사태가 해결되지 않자 급기야 연로한 설봉 스님께서 목숨을 건 단식정진에 돌입하게 이르렀다. 그래도 선학원 이사회와 이사장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성추문이 터진 천주교 모 성당에서 3일만 지나면 조용해 질 것이니 조금만 참으라고 했던 대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일은 이렇게 뭉개고 있으면서 시간을 지체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이미 이사장은 법원으로부터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더군다나 교계 언론은 물론 공중파 뉴스에까지 보도되어 추문은 알려질 만큼 세간에 알려졌다. 무엇보다 전국에서 스님들이 올라와 이사장의 퇴진을 외치고 있기에 설사 자리를 지킨다고 해도 도덕적 목숨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퇴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자신이 몸담아 왔던 선학원에도 회복할 수 없는 폐해를 끼치는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추문의 당사자가 선학원을 계속 대표한다면 그것은 한국불교 전체에 먹칠을 하는 것이 되고, 승가의 도덕성을 심대하게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누구나 권력을 누리고 싶고, 한 번 잡은 권력은 놓고 싶지 않은 것이 권력 지향적 사람들의 성향이다. 하지만 그런 알량한 자리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출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등지고 출가를 결심했을 때는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대자유의 삶, 생사해탈의 삶을 살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출가했을 것이다. 잠시 번뇌 망상에 가려 잘못을 범했을 수도 있고, 선학원 발전을 위해 헌신했는데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야박하게 내친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을 지향하고, 성생활의 자유가 허락되는 속인들조차 성과 관련된 범죄가 불거지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는 세태가 되었다. 그런데 불사음(不邪淫) 계를 지켜야 하는 출가자가 계를 범하고, 더군다나 세속 법에 의해 유죄를 선고 받고, 그 사실이 만 천하에 알려진 마당에 자리를 계속 지키겠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한 일이다. 이 순간 법진 이사장이 선택할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하루 빨리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그것이 여생을 위해서도 현명한 결정이 될 것이고, 그동안 헌신해 왔던 선학원의 발전이나 불교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자신이 평생 공을 들려왔던 것들은 하루아침에 내려놓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선학원의 수장답게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선(禪)의 정신을 발휘할 때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 상황에서 주저하지 않고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것이 선을 이야기 했던 수장이 보일 자세다. 금지옥엽으로 보살펴 온 육신마저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것이 중생의 삶인데 그까짓 지위와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제라도 홀가분하게 내려놓고 떠나는 것이 출가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고, 추문에 휩싸여 날로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는 선학원을 자유롭게 해 주는 길이다.

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그래도 억울한 생각이 들고, 아쉬운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면 자기 한 몸 사퇴하는 것이 그동안 누려왔던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사중득활(死中得活)’이라고 했다. 크게 죽겠다고 각오하는 순간 오히려 살 길이 열린다는 것이 선사들의 가르침이다. 내려놓는 것이 죽음처럼 두렵게 생각되겠지만 그렇게 해서 잃는 것이라고는 물속의 달과 같은 허황된 지위와 명예일 뿐이다. 크게 죽을 때 당사자에게도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릴 것이고, 선학원도 수행자의 본가라는 명성을 되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 버리고 또 버리기 위해 출가한 것이 수행자의 삶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법(法)도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랴!’고 경책했다. 영광스러운 지위와 명예도 아낌없이 버리는 것이 수행자의 삶인데 지탄받는 그 자리에 연연해서 얻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1434호 / 2018년 4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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