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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팔에 퍼진 급성골수염…반복 수술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

  • 상생
  • 입력 2018.03.30 14:14
  • 수정 2018.03.30 14:17
  • 댓글 1

조계사·화계사·법보신문 이주민돕기 공동캠페인

▲ 캄보디아 린사로 스님은 3월27일 병원을 찾아 띠엥씨가 하루빨리 회복되길 발원하며 축원기도를 진행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띠엥씨
염증으로 오른팔 절단 위기도
7번 수술했지만 완치 요원해
고향 어머니 홀로 당뇨 투병
빨리 회복해 일할 생각만 간절

“휴...”
붕데로 칭칭 감긴 손을 보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띠엥(32)씨의 입에서 다시 한숨이 나온다. 순식간에 오른팔을 덮친 급성골수염. 반복되는 수술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

올해 초 퇴근 하던 길, 벽에서 튀어나온 철심에 걸려 손등이 찢어졌다. 약국이 보이지 않아 집근처에 와서야 약을 구해 상처부위를 소독했다. 무심하게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을 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상처는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커져 손바닥까지 뼈가 드러났고 손은 점점 부어올랐다. 사고가 나고 일주일 후에야 병원을 찾았다. 치료를 받아도 호전되기는커녕 손목, 아래팔뚝, 팔꿈치를 지나 윗팔뚝까지 통증이 퍼져갔다. 잠도 잘 수 없을 정도의 극한 아픔과 고열이 온몸을 들쑤셨다. 괴사된 골 조직을 제거하고 항생제 치료를 병행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더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했다. 입원 후 한 달째 되던 날이었다.

띠엥씨의 병인 급성 골수염은 뼈의 염증이 혈액을 통해 퍼지는 병으로 외상을 입었을 때 외부로부터 세균이 들어올 수 있는 상태가 돼 감염되어 발생할 수 있다. 상처가 나자마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방치한 채로 두어 팔 전체로 염증이 뻗어갔던 것이다. 사고가 나고 한달 보름 후에야 대학병원으로 갔다. 그나마도 치료가 더 늦었다면 팔을 잘라내야 할 상황이었다. 가장 최근 감염된 부위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윗팔뚝, 아랫팔뚝, 팔목 등의 괴사된 골조직 제거 수술을 3차례 하고 나서야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제 최초 감염부위인 손 수술이 남아있다.

병원에 다니는 동안 공장 일을 할 수 없었다. 사장님에게 부탁을 거듭한 끝에 겨우 휴직을 할 수 있었다.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됐을 때 재감염의 위험이 있었고 여러 차례의 수술로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병원에 입원해 집중치료를 받아야 그나마 완치의 희망이 있었다. 휴직을 한 덕에 보험이 유지돼 그나마 병원비 부담이 덜했다. 하지만 6개월 이상 수술과 치료를 지속해야하기에 띠엥씨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 역시 편찮으시기 때문이다.

“고향에 보낸 돈을 다시 가져와 치료비로 냈습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도 편찮으셔서 계속 병원에 다니셔야 하고 무엇보다 제 걱정으로 어머니 병환이 깊어질까 마음이 무겁습니다. 병원비가 계속 나올 텐데. 저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고 몸도 성하지 않고….”

띠엥씨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띠엥씨가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를 떠났다. 홀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국수 면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어머니의 몸은 당뇨로 망가져 있었다. 대학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아픈 어머니에게 언제까지 의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는 띠엥씨가 가장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났다. 집수리, 농장일, 호텔보이 등등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다양한 일을 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한국에서 돈을 벌고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 듣는 한국은 꿈의 나라였다. 한국이라면 일을 찾아 전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일하는 틈틈이 한국어를 배웠다. 그렇게 5년을 지낸 후 한국에 갔다.

2014년 한국에 와서 처음 일했던 곳은 경기도 양주의 주물공장이었다. 900℃ 가 넘는 펄펄 끓는 쇠를 직접 부어야 했다. 보통 50도가 넘는 공장 안의 공기가 숨을 막히게 했다. 뜨거운 공기와 먼지를 마시며 매일 주중 14시간, 주말 10시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하지만 공장에서는 교육생이라는 핑계로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직장으로 옮기려고 하자 불법체류자를 만들어버리겠다며 협박했다. 공장 기숙사에 감금되다시피 지내다 이주민 센터의 도움으로 겨우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이 저를 조금이나마 성장시켜줬습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힘들었지만 한국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 한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거든요. 매일의 생활이 고됐지만 틈틈이 공부하면서 캄보디아 불자회에도 나갔습니다.”

주말에 구미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소페악 스님 법회를 나가고 한국어 공부를 하며 친구들도 만나며 이어가며 띠엥의 생활도 조금은 안정을 찾았다. 낯설기만한 한국땅에 마음 붙일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그나마 다져놓았던 한국의 생활 기반도 무너져내렸다.

현재 띠엥씨는 재감염 예방을 위해 독방에 격리돼 치료중이다.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무겁다. 어머니의 건강, 성치 않은 몸, 앞으로 나올 막대한 병원비 등등. 다른 소망은 없다. 그저 빨리 건강해져 일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2)725-7010

창원=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434호 / 2018년 4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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