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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형식과 시기보다 내용이 중요

개헌이 국내 정치의 주요 현안으로 부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에 국회에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발의에 대하여 야당은 국회에서 통과가 불가하다는 강한 반대 의사를 개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주요 후보들이 6월 지방선거 때 동시투표로 개헌을 하겠다고 공약했으며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의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반면 야당은 개헌의 핵심인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축소 방안이 미흡하며, 시간이 촉박해도 국회와 협상하지 않은 채로 발의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국민은 개헌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에 별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현행 헌법은 1987년 6·10민주항쟁을 통해 얻어진 고귀한 산물이다. 독재적 권위주의 정부를 연장시키려는 세력에게 모든 국민이 온 몸으로 항거하여 직선제를 쟁취했기 때문에 당시 개헌은 초미의 관심사였고 국민적 합의를 통해 완성됐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국민 대다수가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개헌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지만, 왜 정부여당과 야당이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정치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는 납득을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 때 동시투표도 중요하지만 헌법 개정안 하나하나에 대해 국민이 충분히 숙의하고 합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개정안 내용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우리가 지향하는 국가의 모습과 정합성을 갖는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동시투표보다 더 중요하다. 국민과의 약속도 지켜야 하지만 원자력발전소 공사 지속과 관련해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정책결정방법과 같은 숙의과정을 거치면 국민도 납득할 것이다. 대통령 발의로 인해 개헌과정이 이미 시작됐지만 정부와 여당은 국회와 국민의 합의가 없으면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 발의안은 국회 재적인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통과되며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국회에서 부결될 것을 알면서도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면 지방선거용 관제개헌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동시투표 이외에도 발의안의 전문, 수도조항, 권력구조, 토지공개념, 노동자와 사람 등의 용어 사용을 둘러싼 논의가 이미 벌어지고 있다.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를 보다 심도 있게 추진할 1차적 책임은 발의한 대통령과 이를 지지하는 여당에게 있다.

야당도 개헌을 정략적인 차원에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국회에서 여야당 합의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형식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가 아니라 왜 투표시기를 연기할 필요가 있는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사유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의회 민주주의를 무시했다는 등의 정치적 언설을 앞세울게 아니라 대통령 발의안에 담겨져 있는 내용에 대한 논의의 장에 참여하여 대통령 발의안보다 더 좋은 개정안을 마련하여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개헌논의는 정부여당 혹은 야당, 진보 혹은 보수 등 특정 정치세력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다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향후 100년 동안 지속될 국가의 근간을 새롭게 정립한다는 공감 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내세우면 개헌은 사(邪)가 될 것이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다면 정(正)이 될 것이다. 정부여당과 야당은 개헌의 형식과 시기에 얽매이지 말고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으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개헌안을 마련하는데 진력해야 한다.
 
김관규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kwankyu@dongguk.edu
 


[1434호 / 2018년 4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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