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조정래의 ‘인도, 삶의 영원한 거울’④ - 1983년 ‘불교사상’
10. 조정래의 ‘인도, 삶의 영원한 거울’④ - 1983년 ‘불교사상’
  • 법보신문
  • 승인 2018.04.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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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인류 모습 비춰주는 영원의 거울

만약 온대나 한대지방 사람들을 인도에서 살게하면 게을러지는 것은 고사하고 절대수명도 반이나 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며칠을 머무는 동안 그걸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영국의 오랜 식민통치에도
스스로 모습 지켜낸 인도인
현재 우리들 모습 반성케해


세계를 움직이는 네 가지 종교가 모두 어디서 발상되었는지를 우리는 주시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는 그 척박한 땅 이스라엘에서, 이슬람교는 그 불모의 땅 중동에서, 불교와 힌두교는 적도의 대륙 인도에서 생겨난 것이 우연이었을까.

인도의 오늘의 모습은 정치의 술수로 빚어진 비참상도 아니요, 고질적 사회제도가 토해낸 오물도 아니다. 그런 영향도 다소 있을 수 있겠으나 더 절대적인 것은 그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기질과 정신에 의해 필연적으로 영위되고 있는 가장 그들다운, 그들만의 삶의 양상을 그들이 즐기고 지속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삶의 부질없음과 생명의 하찮음을 선험적으로 깨닫고 있는 그들이 물질문명의 휘황한 깃발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20세기 물질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면 그들이 우리보다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나라보다 일찍이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아온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늘날까지 그들 순수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것은 식민지 잔재의 절대적 증거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백가지가 넘는 그들의 부족어와 아무리 크게 나누어도 22개 언어권을 형성하고 있는 대륙을 통치하기 위한 그들의 필요성에 의해 취해진 조치일 뿐, 결코 정신의 파괴 현상이 빚어낸 비극은 아닌 것이다. 그들의 문학과 언어는 엄연히 그들 고유어로 창작되고 있고, 문인협회의 회원들은 그 22개 언어권에서 골고루 선정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인도를 보고 경탄한 것은 그들이 그들 스스로의 모습을 짙게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건 반대로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마구 내던져 버리고 무작정 서구적 가치관, 서구적 물질주의를 향하여 치닫고 있는 불나방 떼 같은 꼴을 혐오해 온 반작용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먼 하늘 끝으로 향하고 있는 인도인의 깊은 눈길,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사색의 깊이를 지닌 표정, 나는 오래도록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스러져 갈 즈음에 나는 다시 인도로 향할 것이다. 다시 찾아간 갠지즈 강변의 바라나시에는 내 삶의 거처와 생존의 의미와 영혼의 길이 무엇인지를 확인시키는 인도인들이 변함없이 거기 에 있을 것임을 믿는다.

▲ 소설가
인도, 그곳은 인류의 모습을 비춰주는 영원의 거울이며 영원의 고향인 것이다. 내 이 믿음은 내 체질 속에 용해되어 있는 석가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면 인도의 정치 모순이나 사회제도의 고질쯤이 일으키는 문제점이 있다 한들 그것이 무슨 대수이랴.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제도나 조직이 인간에게 최선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세계 정치사가 충분히 입증하지 않았는가. 우주 안에서 생명의 부질없음인데 그까짓 인위적 제도나 조직이 오죽하랴. <끝>

 


[1434호 / 2018년 4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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