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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수행 이명희-하

기자명 법보신문

▲ 51, 선견화
어색함은 잠깐이었다.

‘지심귀명례’ 소리 가슴 설레
다리 쥐·숨 턱밑까지 차올라
삼천배 회향 기쁨 감사 기도
가족 모두 불법승 삼보 귀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해인성지(海印聖地) 가야산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어느새 나타난 백련암은 고졸했다. ‘白蓮庵’이라 쓰인 입구 앞에 놓은 돌계단이 정겨웠다. 걸어서 오르는 길 중턱에서부터 “지심귀명례” 소리가 들렸다. 어느 합창단의 노래보다 더 아름다운 합창이었다.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백련암의 상징이라는 불면석(佛面石)도 마주했다. 성철 스님이 1967년 해인총림 방장에 취임하면서 백련암은 늘 깨어 있었다고 하니 오늘밤 삼천배에 임하는 마음과 불면석의 의미가 닮길 바랐다.

무수하게 많은 좌복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짐을 풀고 법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제야 백련암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각 전각을 돌며 참배했다. 간단한 공양을 마친 뒤 법우들과 차담을 나눴다. 백련암은 구참자들의 여유, 초심자들의 긴장이 뒤섞여 있었다. 다음날 새벽에 만끽할 환희심이 꿈틀대고 있었다. 본격적인 삼천배가 시작됐다.

삼천배는 처음이었다. 적잖이 걱정됐다. 함께하는 법우들이 큰 힘이었다. 첫 1000배는 1배부터 끝까지 힘 있게 밀고 나가 마무리했다. 그러나 고비는 곳곳에 있었다. 1500배를 넘기고 나니 다리가 쥐가 난듯했다. 불안한 생각이 올라오면 목소리를 더 크게 냈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 불렀다. 2000배를 마친 뒤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오르내릴 때 아찔함도 기쁘기만 했다.

2500배가 넘어가니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2600배를 마치고 나와서 법당 밖으로 나와 마당을 뱅뱅 돌며 힘을 모은 뒤 다시 법당으로 들어갔다. 법당에 서니 바닥이 기우뚱한 느낌이 들면서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한 배 한 배 정성을 다했다.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드디어 삼천배가 끝났다. 30배를 더 하며 ‘부처님 감사합니다’를 되뇌었다. ‘첫 삼천배 원만회향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아비라 법우 모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물 나게도 나도 모르게 감사의 염불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삼천배를 마치고 거북바위 앞 샘물에서 물 한 병 담았다. 그 물을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한 달 동안은 아이에게 그 물과 함께 약을 먹였다. 하루, 하루, 한 달,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아이의 건강은 좋아지고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사이 약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약을 아예 먹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 백련암을 오를 때 5살이었던 그 꼬마는 이제 14살의 중학생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엄마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라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아이가 그 사실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음을 안다. 어느덧 부처님 도량에서 행복하고 감사할 줄 아는 청소년으로 무럭무럭 자랐기 때문이다.

2년 전 막내가 5학년이었던 그 해 여름, 한창 사춘기가 시작될 당시에도 저녁마다 서울 조계사 그리고 길상사에 가서 아이와 함께 108배를 했다. 우리 모자는 절을 마친 뒤 법복을 입고 종로를 걸으며 맛있는 팥빙수도 먹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후 5시를 지나 뜨거운 햇빛이 한 풀 꺾이고 난 시각, 도선사 마애불 앞에 가서 시원한 산바람 맞으며 기도를 했다. 그렇게 더운 줄도 모르고 즐거운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막내는 어릴 때부터 다니던 해인사 백련암을 ‘먼 절’이라고 부른다. 상대적으로 길상사는 ‘가까운 절’이다. 조계사와 도선사는 ‘절이 잘 되는(?) 절’이란다. 어느덧 우리 가족 모두는 부처님을 가까이 하는 도반이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맺은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잘 자라주기를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부처님 향훈을 오롯하게 간직하고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고맙다. 아들. 긴 시간 먼 해인사 백련암까지 다닐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부처님 법 안에서 도반으로 함께 할 수 있어 또 감사하다.


[1434호 / 2018년 4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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