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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파라다이스

기자명 임연숙

디자인으로 담아낸 도시의 다양함

▲ 은희준 作 ‘Paradise’, 캔버스에 아크릴, 116.8×91cm, 2017년.

작품과 작가를 만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작품을 먼저 보고 작가를 만나는 경우, 작가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먼저 만나고 후에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작품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갤러리나 미술관 등 전시공간에서, 혹은 지면을 통해서, 온라인을 통해서, 우편물로 배달되는 도록이나 리플렛을 통해서 작품을 먼저 본 후에 작가를 만나는 경우일 듯하다. 어떠한 경로로 작품과 작가를 만나던지 이러한 만남 또한 큰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선·곡선의 중첩된 화면
컴퓨터그래픽처럼 인위적
만화경처럼 환상적 느낌도
특정 사건의 장으로 기록

동시대나 같은 세대의 작가들은 함께 활동했던 인연으로 비교적 정해진 길을 따라 만나게 된다. 윗세대 선배 작가들은 주로 책이나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후배 작가와 젊은 작가들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늘 꼼꼼히 전시를 챙겨보거나 매체에 관심을 두지만 소개를 받거나 만나는 경우는 시간이 갈수록 한정적으로 되어간다.

은희준 작가는 다른 일로 만났다가 한참 후에 작업을 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을 하면서도 사람이 참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전혀 작가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더 궁금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검색창에 작가이름을 입력하면 금방 작품이 뜨는데, 그 생각은 못하고 있다가 작품을 보게 되었다. 의외의 반전이었다. 하던 일이 아르바이트였고, 본업은 작가였던 것이다. 평면회화가 발전할 만큼 발전했고, 더 이상 신선한 것이 없을 것 같아도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고 생김과 생각이 다르듯 그림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도시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가장 좋은 그림은 작가가 느끼는 그대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의 공감도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푸근한 인상 내면의 예리한 작가적 시각, 자신의 내면과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다운 모습을 찾아 나가는 작가를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직선과 곡선의 중첩된 화면은 응축과 확산의 느낌을 준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려진 그림은 컴퓨터그래픽처럼 매끄럽게 마치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작가의 수없이 반복된 붓질로 완성된 화면이다. 수많은 색감의 조합과 미묘한 색의 변화조차도 붓질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위에 섬광처럼 지나가는 가는 선들은 종이테이프 작업을 통해 기계적이고 깔끔한 마감의 느낌을 준다. 무지개색과 알 수 없는 색면의 조합은 마치 프리즘이나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을 받는다.

작가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자신에 대한 표현을 고심했고, 그 속에서 도시의 속도와 빛 그리고 범람하는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도시의 화려함과 차가움, 그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환상적인 일들을 선과 색, 쪼개진 화면으로 담아냈다. 나를 둘러싼 풍경과 환경이 겹쳐지고 회오리치며 내 생각 속으로 들어온다.

작가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과 표현에 대한 갈망이 많다. ‘자기스러움’을 어떤 방법과 기법을 동원해서라도 표현하고자 한다. 깊이 있는 자신의 통찰은 자연스럽게 같은 고민과 느낌을 갖고 있는 관객을 만나고 거기에서 어떤 소통의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듯하다. 작가의 말처럼 화면은 응축, 폭발하며 어떤 특정한 사건의 장으로 기록되었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34호 / 2018년 4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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