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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밧다 ①

기자명 김규보

“사형수와 결혼 못하면 곡기 끊겠다”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 저잣거리를 곁에 둔 거대한 저택의 가장 높은 층 창문이 빠끔히 열렸다. 한 여인이 윤기 나는 머릿결을 찰랑거리며 얼굴을 내밀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밑을 내려다보았다. 사형수를 집행장까지 이송하는 행렬과 구경하는 사람들이 엉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남의 것이나 훔치고 다니는 비열한 자식!” “저 도적놈을 어서 죽여라!”

사형수 보고 결혼 결심한 딸
딸의 고집 꺾지 못한 부모님
보석금 내고 집으로 데려 와

멀리서 사형수를 지켜보던 여인의 얼굴에 홍조가 올라오더니 식은땀까지 줄줄 흘러내렸다. 울퉁불퉁한 근육, 직각으로 벌어진 어깨에 햇빛 닿은 검은 피부가 타오를 것처럼 번뜩였다. 여인은 뜨거운 불덩이가 심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숨이 가빠와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사형수의 넓은 등판이 군중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간신히 버티고 서 있다가, 큰소리로 부모를 불렀다. 딸의 애타는 목소리에 놀란 부모가 방으로 들어왔다.

“밧다야. 무슨 일이냐. 웬 땀이 그렇게 많이 흐르고 있느냐. 어서 말해보거라.”
“아버님, 어머님. 집행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를 보았습니다. 그와 결혼을 해야겠습니다. 허락하지 않는다면 곡기를 끊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부모는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혀버렸다. 라자가하 최고 부자의 외동딸로 사랑을 담뿍 받으며 자란 밧다는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한 가지 걱정이 있었으니, 딸의 예사롭지 않은 욕정이었다. 어린 나이 때부터 남자를 보는 눈빛에 욕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안 부모는 딸을 저택 가장 높은 층에 가두다시피 했다. 다행스럽게도 딸은 그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갔다. 그렇게 무사히 성인으로 자라나 싶었는데 결혼을, 그것도 사형수와 하겠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결혼하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반대하실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합니다. 허락하시겠다면 저 사형수가 살도록 수를 써 주세요.”

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느낀 부모는 급히 금은보화를 꺼내 집행장으로 달려갔다. 도착했을 때는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이었다. 이름은 사투카, 딸 밧다와 또래인 청년이었다. 금은보화를 보석금으로 건네주고 사투카를 집으로 데려왔다. 누가 보아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오랫동안 씻지 않아 행색은 꾀죄죄했다. 부모는 귀한 향수를 아낌없이 써 목욕을 시킨 뒤, 보석 박힌 옷으로 갈아입혔다.

“우리 딸이 자네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네. 그간 저질렀던 나쁜 짓은 잊고 새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네. 딸과 행복하게 산다면 자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들어주도록 하겠네.”

사형 직전 풀려난 것에서 나아가 라자가하 제일 부호의 사위가 된다니. 횡재도 이런 횡재가 있을까. 사투카는 집안 곳곳에 걸린 화려한 장식을 유심히 살펴보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아야 했다. 대신 애써 평온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따님께서 저를 원하신다니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긴 했으나, 그것을 제외하면 바르게 살아왔습니다. 결혼은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거절해야 마땅하나, 목숨을 살려주셨으니 응하겠습니다.”

꺼림칙했으나 바르게 살아왔다는 말을 믿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부모는 서둘러 날짜를 잡고 결혼식 준비에 착수했다. 딸을 바라보는 사투카의 눈빛에 욕망이 그득 들었다는 걸 알았지만, 앞으로 단속해 나가리라 마음먹으며 모른 척 넘어갔다. 결혼식이 열리는 날, 수많은 이들이 궁궐 같은 밧다의 집을 찾아 축복했다. 밧다는 사투카에게 안겨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밧다를 안은 사투카의 한쪽 입꼬리가 찢어진 듯 올라갔다.

‘이 집안 재물은 모두 내 것이 될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날을 앞당겨야겠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어떻게 할까…. 아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35호 / 2018년 4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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