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여인의 삶
티베트여인의 삶
  • 김형규
  • 승인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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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정부 든든한 버팀목…‘일처다부제’퇴색 자유연애 눈떠”
험준한 절벽을 끼고 위태롭게 솟아있는 황금의 라마교 사원. 새벽 어스름 날이 밝아 올 때 사원 바닥에 온몸을 던져 절을 하는 오체투지 여인의 모습. 이것이 티베트 여성의 모든 것일까?

인도북부 달라이라마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 이곳은 우리 기억 속에 사진 속의 한 장면처럼 박제화 된 소극적이고 종교적이기만 한 티베트 여인의 모습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곳이다.

다람살라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거리와 관공서 등 모든 생활 터전에서 남자보다 더 많은 여성들의 활동모습이다. 고위급 장관에서 거리의 가게에 이르기까지 다람살라에는 여성들이 넘쳐난다. 위 다람살라(Upper Dharmsala)의 매클로 간지(Mcleod Ganj). 티베트 여성들의 생활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악세서리·전통의상·호프집 등 약 30여 개를 헤아리는 티베트 가게들이 즐비한데 그 가게의 주인들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곱게 늙은 할머니부터 아이를 등에 업은 젊은 아낙까지 가게에는 예외 없이 여성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티베트 여성들의 강한 생활력은 여성이 경제권을 가지는 티베트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기혼여성 잠파(Jampa,25)씨는 “이곳 여성들의 대부분은 한가지씩 부업을 하고 있다”며 “여성들의 강한 생활력이 망명정부의 경제력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모권이 강하면 반대로 부권은 약해지는 것일까? 남성들이 관광가이드 외에 변변한 직업 없이 실업자로 사는 것도 재미있는 특징이다. 강한 생활력과 비례해 이곳 여성들의 종교적인 신심도 대단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안에 모셔진 불단에 간단한 예불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일 집에서 가까운 사찰을 찾아 온몸을 바닥에 엎드리는 108배를 빠뜨리지 않는다. 티베트인의 가게가 줄지어 있는 매클로 간지 거리 한복판에 기다란 윤장대를 마련해 놓고 물건을 파는 중간 중간 윤장대를 돌리는 것을 잊지 않는 데에서도 이들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신심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들의 깊은 신심은 자녀 양육에도 독특하게 작용한다. 자녀들의 성(姓)을 아버지의 이름에서 따는 우리와 달리 이곳에서는 존경하는 라마(스님)의 성에서 따는 것이 그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라마(스님)에 대한 존경심을 남다르다. 만약 스님의 성을 따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그때서야 비로소 부모의 이름에서 성을 따는데 아버지·어머니 이름 어느 쪽을 따르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세계의 오지 중 하나였던 이곳 다람살라가 관광지화 되면서 여인들의 인식과 삶에도 커다란 변화가 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연애관의 변화. 전통적인 결혼관이었던 ‘중매’와 한 여자가 여러 명의 남자 형제들과 함께 결혼하는 ‘일처다부제’가 무너지고 어느새 ‘자유연애’가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다람살라에서도 이제 젊은 여자와 남자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같은 현상은 성(性)에 있어서 상당히 개방적이었던 이들의 전통에 비쳐볼 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예를 들면 티베트 사람들은 부부 각자에게 다른 상대가 생겨도 결코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가 항상 긍정적이지는 않다. 비디오방과 영화관이 생기고 관광객이 들어오면서 소녀들은 어느덧 티베트 전통 옷이나 음식보다는 서서히 청바지와 코카콜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더불어 외국인과 결혼해 해외로 나가려고 하거나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호하는 젊은 여성들의 의식변화가 그들 어머니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전통 문화와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 볼 일이다.

■ 출가 10영차 상기릴수 사미니

상기릴수(22).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직 앳띈 얼굴을 벗지 못한 겔룩파의 수행자다. 물론 티베트에는 비구니계를 설하는 곳이 없으므로 그는 아직 사미니다. 출가한지 10년째 됐다. 그는 4년 전인 96년 중국을 탈출해 다람살라에 왔다. 부모님은 어떻게 됐느냐는 질문에 환한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더 이상은 묻지 말하고 말을 자른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이 편합니다. 출가를 했으니 다른 길이 있겠습니까? 열심히 정진해야지요”

다람살라로 온 이후 생활이 어떻냐고 묻자 그의 얼굴은 다시 환해진다. “하루 빨리 티베트가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보존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민족에게 빛과 같은 존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를 합니다.” 어떤 수행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병원 근무 엘리트 여성 야쉬 씨

티베트 국립병원에 근무하는 야쉬(32)는 다람살라에서 나고 자란 망명 2세다. 그의 부모는 지난 59년 달라이라마가 중국에서 이곳으로 망명할 때 따라왔다. 망명 2세들 누구나 그렇듯 자식을 잘 가르치겠다는 부모의 노력으로 그는 인도에서 대학을 나오고 선망의 대상인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달라이라마 성하는 부처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 분이 있기 때문에 다람살라가 있을 수 있는 거지요”

달라이라마에 대해 묻자 그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달라이라마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는 다람살라에 있는 모든 티베트인들의 공통적인 마음이다. 그는 ‘슈바방딘’이라는 티베트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결혼했다는 표시로 우리의 앞치마와 비슷한 ‘방딘’을 두르고 있다.

“남편은 같은 병원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습니다. 연애 결혼을 했습니다.” 앞에 두른 ‘방딘’을 가리키자 그가 한 말이다.

■ 티베트 불교의 여성 출가제도

티베트에서는 출가 여성을 ‘아니(Ani)’라고 부른다. 또는 다소 존경이 담긴 호칭인 ‘쭌마(Tsunma)’ ‘촐라(Chola)’ 등으로 불린다. 옛부터 티베트에는 비구니계를 설하는 곳이 없어 여성들은 출가를 해도 ‘사미니’로 만족을 해야 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티베트의 ‘아니’들이 태국이나 베트남, 혹은 우리 나라에서 비구니계를 받고 다시 다람살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으며 달라이라마도 이를 허용하고 있다.

비구니가 없고 사미니만 있다고 해서 그들의 교육과정이 녹녹한 것은 아니다. ‘아니’가 되는 데에는 나이나 출신의 제한은 없다. 그러나 현지 사람들에 따르면 보통 결혼을 하면 출가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들은 출가 후 6개월에서 1년 기간동안 행자교육을 받는다. 교육과정은 주로 경전을 외우는 것인데 경전을 외울 능력이 돼야 비로소 사미니계를 주고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된다. 보통 교육기간은 13년 정도 걸리는데 불교 논리학, 인식론, 중관, 구사론, 율장 등 불교교육과 함께 수학, 과학, 영어 공부도 병행된다. 다람살라의 ‘아니곰파(비구니 사찰)’로는 ‘간덴쵤링’이 유명하다. 겨울마다 인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아니’들이 전부 모여 세미나와 토론회를 등을 개최한다.



다람살라 =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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