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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선생의 ‘처염상정’

선생 유해 통영으로 귀향
분단조국에 아파하면서도
연꽃처럼 맑은 선율 남겨

세계적인 작곡자 윤이상(1917~1995) 선생을 추모하는 통영국제음악제가 3월30일부터 4월8일까지 열렸다. ‘귀향(Returning Home)’이라는 주제의 통영국제음악제는 세연을 접은 지 23년 만에 선생의 유해가 고향 통영으로 돌아오면서 더 관심을 모았다.

윤이상 선생의 1981년 작품 ‘광주여 영원히’로 막이 오른 국제음악제에서는 불교 색채가 짙은 ‘바라’(1960)를 비롯해 ‘노래’(1964), 실내교향곡 2번 ‘자유의 희생자들에게’(1989) 등 그의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연주됐다. 특히 선생이 1950년대 한국에서 작곡해 1956년 프랑스 파리에서 완성했던 관현악곡 ‘낙동강의 시(詩)’가 62년 만에 처음 연주돼 눈길을 끌었다. 폐막공연에서는 거장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지휘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선생의 ‘바라’와 번스타인 ‘세레나데’,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연주했고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가 번스타인 곡의 협연을 맡았다. 뒤늦게나마 사무치게 그리던 고향땅에 묻힌 거장의 귀향에 대한 세계 음악인들의 축하무대였다.

선생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자다. 유럽 음악계에선 그를 “동양의 사상과 음악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시켜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로 극찬한다. 생전에 이미 ‘유럽의 현존하는 5대 작곡가’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의 한 사람으로도 선정됐다. 현재 선생의 작품들은 유럽 연주회의 기본 프로그램으로 정착됐고,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의 과제곡으로도 지정됐다.

선생이 오랜 세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것은 1967년 ‘동베를린 간첩사건’에 연루되면서부터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된 선생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폰 카라얀을 비롯한 저명인사들의 탄원이 잇따르면서 1967년 서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금기인물로 낙인찍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입국이 불허됐다. 2006년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동베를린 사건이 1967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에 대한 거센 비판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과장되고 확대 해석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이념의 벽에 막혀 선생의 유해마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최근 통영국제음악당 뒤편 묘역에 안장됐다.

▲ 이재형 국장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는 1995년 쓴 일기에 “중병으로 아파 누운 나의 친구 윤이상,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내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부처님께 기도한다’라고 말했다”고 썼다. 그렇듯 불교는 선생에게 의지처가 되어주었으며, 한국의 스님들도 어떻게든 선생을 도우려 애썼다. 인천 용화선원 송담 스님은 생전의 그를 위로하고 화두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현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도 선생이 타계했을 때 직접 독일에 가 49재를 지내주었으며, 고인의 묘비에 ‘處染常淨(처염상정)’이라는 글을 써주었다.

조국의 분단은 선생에게 깊은 상처였고 회한이었다. 허나 선생은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맑은 선율로 평화를 노래했으며, 세상의 아픔도 감싸 안았다. 선생의 삶과 음악은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이었다.

mitra@beopbo.com
 

[1436호 / 2018년 4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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