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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불교의 교훈

올해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해다. 각계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오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향후 더욱 의미 있는 행사가 개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500여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고려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불교를 국교처럼 숭배하던 왕조였다. 고려의 왕과 귀족들은 앞 다투어 원찰을 건립하였으며, 왕과 나라의 스승이라는 왕사 국사제도도 줄곧 시행되었다. 왕사와 국사를 모시는 책봉의식에서 스님은 왕의 자리에 앉아 왕에게 무려 아홉 번이나 절을 받을 정도였다. 고려불교와 승단이 왕실로부터 얼마나 예우를 받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고려인들은 대규모 외침이 있을 때마다 대장경을 조성하여 이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현종 때 조성된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발원하여 조성된 것이었다. 13세기 몽고군이 침입하여 초조대장경을 불태우자 고려인들은 다시 재조대장경의 조성을 발원하였다. 강화도로 피난한 상태에서도 고려인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에 간절히 의지하면서 전란의 극복을 기원하였다. 한 명의 군인이 더욱 필요한 시점에 한가롭게 무슨 대장경을 조성하고 있느냐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만날 수 있지만, 이같은 비판은 역사적이지 못한 사고에서 기인한 결과이다. 두 차례에 걸친 대장경 조성은 고려인들의 신앙심, 고려인들의 드높은 문화역량 의지의 발현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고려불교는 500여년 세월동안 나라의 구성원들로부터 절대적 귀의를 받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고려불교는 후기에 접어들면서 호된 비판을 받는 대상으로 전락하였으며,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그 처지가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승단의 타락과 성리학의 대두라는 역사 전개상황이 맞물린 결과였다. 고려말 승단의 타락상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고려사’ 등의 역사서가 유생들에 의해 편찬된 것이라는 점, 이들 사서의 불교 관련 기록이 지극히 일방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 등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고려말 승단의 타락상은 그야말로 극심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승단의 타락이 만연한 상황에서 불교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고려말의 지식인들은 이제 불교, 특히 타락한 승단을 버려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하였다. 권문세족과 승단이 누리고 있는 과도한 특혜를 환수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왕조의 탄생과 발전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려왕조가 망하는 그날까지 배불론자들은 불교 자체를 비난하지 않았다. 박초(朴礎)와 같은 극렬 배불론자마저 불교 자체에 대한 비판은 삼갔다. 적어도 고려말까지 살았던 지식인들은 불교에 대한 신앙심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불교와 성리학을 대등한 종교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지도 않았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100년 전의 고려불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특히 지금 이 순간 출가대장부의 길을 걸어가고 계신 스님들께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바로 고려말 승단의 타락이 결국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극심한 불교탄압의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는 점, 그리고 조선시대 그 많은 스님들이 흘리셨던 ‘피눈물’은 결국 고려말 승단의 타락에서 비롯한 것이었다는 지엄한 역사의 교훈이다.

고려불교가 남겨놓은 역사적 교훈을 되뇌지 않더라도 청정승가의 유지와 승풍진작 없이 한국불교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단지 여래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스님들께서 ‘응공(應供)’의 존경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 땅의 모든 불제자가 당연하고도 마땅한 마음으로 스님들께 공양을 올릴 수 있는 승가, 이 사회의 모든 지식인들이 승가를 향해 무한한 조복심을 낼 수 있는 그런 승가의 모습을 다시 꿈꾸어 보고 싶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436호 / 2018년 4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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