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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청련사 소장 불상·불화 문화재 가치 크다”

  • 교학
  • 입력 2018.04.17 12:57
  • 수정 2018.04.18 05:58
  • 댓글 1

청년사 창건 기념 학술대회
유·무형문화재 등 심층 조명
청년사 양주이건은 큰 사건
어산 상진 스님 범음성 고찰

▲ 양주 청련사가 창건 1191주년을 기념해 4월14일 개최한 학술세미나.
천년고찰 양주 청련사의 역사와 유·무형 문화재를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양주 청련사는 창건 1191주년을 맞아 4월14일 대적광전에서 ‘양주 청련사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첫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청련사는 신라 흥덕왕 2년인 827년 창건된 사찰로 서울 하왕십리 종남산 무학봉 자락에 위치했다. 안정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던 청련사는 서울시 개발계획에 따라 건설사에 매각됐고 2010년 지금의 양주 개명산으로 이전했다.

이날 학술세미나는 청련사 주지 해경 스님의 장학금 수여 및 청련사 이사장 상진 스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태고종 총무원장 편백운 스님 치사, 태고종 원로회의 의장 덕화 스님 격려사, 양주시 사암연합회장 혜성 스님·이성호 양주시장·정성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김동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소리 특별위원장·이현영 (사)한국종교협의회 회장이 축사를 했다.

이어 최종남 중앙승가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학술세미나에서 이종수 순천대 사학과 교수는 청련사의 역사적 변천과 위상에 대해 고찰했다. 청련사와 관련된 문헌 분석을 통해 청련사의 창건 및 중창에 대해 고찰한 이 교수는 신라시대 이래 8번의 중창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특히 창건 당시 청련사는 중국으로부터 선이 전래된 시기였으므로 선종 사찰로 창건됐을 가능성이 크고,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가 한양 지덕을 비보하는 사찰로 청련사를 지정하면서 종남산의 서쪽 계곡에서 동쪽 계곡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교수는 “2010년의 여덟 번째 중창은 사찰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대작불사였다”며 “천년을 지켜온 자리를 뒤로하고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기 위한 중창이었다”고 평가했다.

유근자 동국대 겸임교수는 청련사 유형문화재 중 조성연대가 확실한 대웅전 목조아미타삼존상과 원통보전 목조관음보살상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청련사의 불교조각을 고찰했다. 불화 화기를 분석한 유 교수는 왕실과 불교계의 매개자 역할을 했던 상궁들이 청련사 불화 조성 불사에 참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어 1854년 법당 중창의 대시주자로 참여한 정조의 사위 홍현주와 영의정을 지냈던 권돈인의 시주, 1913년 대웅전 아미타삼존상 개금불사 때 고종의 후궁이 참여하고 있는 사실을 통해 청련사가 조선시대 왕실과 관련이 깊은 사찰임을 밝혔다. 유 교수는 “청련사의 아미타삼존상과 관음보살상은 17세기 불교조각 연구의 기준작으로서 조선후기 불상 연구의 귀중한 자료”라며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 서울 하왕십리에 위치했던 청련사 옛 전경.
▲ 2010년 양주로 이건한 이후의 청련사 전경.
유경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불화를 비롯해 청련사에 봉안된 13건의 불화의 특징과 의미를 규명했다. 유 학예사는 “청련사에 봉안된 불화는 19세기 불교 신앙과 도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라며 “이들 불화는 연구자는 물론 역사학계나 불교계에 큰 보물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청련사 불화는 19세기 말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청련사의 역사를 고증하는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19~20세기까지 불화의 도상과 양식적 특징, 후원자와 화승을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성운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는 청련사의 전통의례문화에 대해 고찰했다. 그는 “청련사 도량에서는 창건 중창 이래 국왕을 비롯한 사부대중의 바람을 성취하기 위해 다양한 의례가 설행됐다”며 “청련사 소장 ‘영험전’은 그 산물의 하나로 영험이 없는 영험기가 없듯 지극한 정성은 영험으로 확인되고 그 증거는 영험이라는 민중의 역사를 이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서울에서 양주로 이건된 청련사는 단지 더 넓은 도량을 확보하여 옮겨놓았다고 보면 시대를 읽지 못하는 것”이라며 “청련사의 양주 이건은 당우의 이건보다 중요한 천년의 소리와 전통문화를 이건해온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윤소희 한양대 음악학 박사는 청련사 어산 상진 스님의 계보와 성음의 특징을 다뤘다. 윤 박사는 “한국의 범패로 고풍·향풍·당풍이 있음을 말해왔으나 당풍범패에서 유래한 범패에만 관심이 집중돼 상대적으로 향풍범패에 대해선 간과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윤 박사는 어산 상진 스님이 독자적인 염불성의 예술적 경지를 구축하기까지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뒤 기초 염불에서 짓소리까지 법기타주 북 가락, 호적 가락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기량을 장엄염불에 투여해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켜온 어산 상진 범음성의 가장 큰 가치와 의미는 향풍범패와 맥이 닿아 있는 점임을 밝혔다.

발표가 끝난 뒤에는 최종남 중앙승가대 교수를 좌장으로 김종진(동국대), 최엽(동국대), 이분희(불교중앙박물관), 손인애(서울대) 박사가 참여한 가운데 전체 토론이 진행됐다.

▲ 양주 청련사 이사장 상진 스님이 학술세미나 총평을 하고 있다.
청련사 이사장 상진 스님은 학술세미나 총평을 통해 “일제강점기 이래 한 번도 정리된 적이 없던 청련사의 역사와 유·무형문화재를 분석해 정리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 청련사의 유·무형문화재가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돼 불교 전통의식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37호 / 2018년 4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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