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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거룩한 세종의 역경사업’ ① - 이병주, 1983년 ‘불교사상’

기자명 법보신문

해묵은 한자문화 맞선 우렁찬 도전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해묵은 한자문화권에 맞선 우렁찬 도전이었다. 자주와 민주와 실용의 보람을 치밀하게 경영한 영주(英主)의 영단이었다. 민족문화의 자랑을 만세반석에 뿌리 내린 거룩이었으니, 특히 반포를 전후한 보급책은 오늘날 생각해도 정녕 놀라운 착상이며 빛저운 신념의 단행이라 절로 머리가 숙는다.

건국 이래 숭유억불 불구
불경 번역해 간행한 것은
구마라집 맞먹는 큰 업적

당시는 건국 이래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신흥 정책이 바야흐로 본 궤에 오른 무렵인데도 불구하고 유학의 기본서인 사서삼경을 본으로 삼지 않고 불교의 전적, 그것도 부처의 삼세담(三世談)을 바탕으로 삼아 갖가지 불경을 번역해서 간행케 한 사실은 광견(光見)이 아니고는 다잡을 수없는 영명(英明)이다. 이는 도교가 국교였던 당조(唐朝)에서 불경을 한역한 구마라집(鳩摩羅什)에 맞먹는 독창적인 업적으로 사뭇 천년을 국교로 신봉한 불교인구, 더구나 민간신앙으로 깊이 뿌리가 박힌 부녀자를 대상으로 삼아 새로 지은 문자를 보급시킴에 활용한 점은 생각사록 슬겨운 천안(天眼)이었다.

물론 도타운 신심이 아니고는 원력이 곁따를 수 없다. 게다가 세종 28년(1446) 3월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한 추천(追薦)과, 또한 내려와서는 세조의 왕권 쟁탈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살육과, 맞추어 세조의 맏아들의 참척 등 번뇌를 끊으려는 속셈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종과 세조의 경불(傾佛)은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커다란 울력이 되어 당시의 상황으로는 실로 놀라운 업적을 낳았던 것이다.

곧 신념이 도도한 세종은 대궐 안에 내불당(內佛堂)을 모심에 있어서도 강행을 계속해서 그 벌떼 같은 반발에도 끝내 회향(廻向)을 거둔 그였음을 상기할 일이다. 그러니까 반대 상소, 심지어는 독부(獨夫)에 비기며 경향의 선비들과 성균관의 학생들까지 총궐기했는데도 모조리 불윤(不允)과 불보(不報)로 물리었으며, 그 사업을 안평(安平)과 수양대군까지 앞세운 세종의 강단이었다.

불경의 번역사업도 한가지였다. 사실 훈민정음의 반포를 반대한 선비도 최만리(崔萬理)만은 아니었다. 그리나 세종은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그 시행을 다각도로 실험을 꾀하여 정음을 창제하고도 일상에의 실용을 위해 민간에 쉽게 침투할 수 있는 노비와 일상에 쓰는 대화 그대로를 산문체로 사용하여 그 호응도까지 검토해서 곧장 시정하는 용의주도였다. 다시 말하면 표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한자의 음운을 우리에 맞게 제정한 ‘동국정운(東國正韻)’을 발간해서 정속(正俗)을 바로잡고, 장엄한 행차와 존엄한 제례(祭禮)에 부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짓게 하여 역성혁명으로 말미암은 위화감을 가셔 천명사상을 고취하는 동시에 여민동락(與民同樂)을 꾀하는 등, 먼저 정음 보급의 가능도를 시험하셨던 것이다.

이병주(1921~2010)

 
전 동국대 교수는 두보시를 연구한 한문학계의 거목으로 그가 남긴 저역서와 논문들은 모두 한국문학사에 중요한 저술이 됐다. ‘연꽃의 사연’을 비롯해 불교와 관련된 글과 저술도 다수 남겼다. 1980년대 중반 정년퇴임했으며 2010년 6월24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436호 / 2018년 4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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