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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남한강-금모래, 은모래

기자명 임연숙

절제하고 놓아둠으로 더 많은 것 담다

▲ 김범석 作 ‘남한강-금모래 은모래’, 한지·먹·호분·과슈, 255×190cm, 2011년.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벗고 온 대지가 깨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꽃이 잘 피다가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춥고, 덥고를 반복하면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때이다. 동양회화에서 수묵화의 전통은 다양한 기법과 형식의 변화를 겪으면서 여전히 현대의 작가들이 다루고 있는 재료이다. 재료의 특성이 하나의 정신을 만들어 내고 미학으로까지 연결되는 예도 극히 드문 일이다. 수묵이라는 재료는 재료로서만이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재료적 특성을 미학적으로 발전시키고 그것이 하나의 행위 예술로까지 다양하게 변용되어왔다.

물·먹·종이가 만들어낸 풍경
분명치 않지만 생명 존재해
외롭거나 공허한 느낌 없어
붓질 무심히 쳐내려간 느낌

다른 재료들에 비해 수묵은 그 자체로서 정신성을 부여해왔던 일련의 과정들이 일면 억지스럽기도 하다. 소나무나 기름을 태워 나오는 그을음을 아교와 섞어 만드는 먹은 그저 재료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이 분명 있다. 물의 농도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필력에 따라 무궁무진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작가에게 있어 표현을 위한 재료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화선지라는 바탕위에 물을 매개로 하여 먹이라는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과 서양의 캔버스라는 바탕위에 오일을 매개로 하여 안료를 사용한 그림의 표현은 그 내용의 형상성과는 별개로 오감으로 느껴지는 감각부터가 다르다. 그것은 좋고 나쁨의 의미가 아니라 감상하는 사람, 혹은 재료를 다루는 작가의 감성과 얼만큼 잘 맞느냐가 선택의 기준일 것이다.

김범석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수묵을 아주 잘 다루는 작가 중 한명이다. 오랜 기간 수묵을 다루어 왔고 수묵의 다양한 변화를 위해 재료들을 결합하고 실험하였다. 하지만 그 기조는 수묵의 범위에서였다.

작가가 다루는 소재는 주로 대지와 산, 작가 주변의 풍경이다. 산과 물, 대지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이라기보다 생명을 담고 있는, 혹은 우리가 뿌리 내리며 살고 있는 대지로서, 작가가 깨달음을 얻고 있는 의미를 담은 풍경이다. 물과 먹, 종이라는 단순한 재료가 만들어내는 수천, 수만의 변화는 과거 수묵의 역사만큼이나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힘을 주고 내지르는 것만이 아니라 힘을 빼고 절제하는 것으로 더 많은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작가노트 중)

작가의 말 속에 오랜 시간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작가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나무와 숲으로 둘러싼 풍경 속에 길과 집과 누각과 사물들이 있다. 산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숲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의 풍경은 평면이지만 커다란 하나의 공간으로 와 닿는다. 형상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멀리서 바라본 화면 속에는 분명 나무와 길과 풀숲이 구분된다. 반복되는 붓질은 무심한 듯 붓을 툭툭 쳐내려간 느낌이다.

인물이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외롭거나 공허한 느낌은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무심한 풍경 속의 한 장면은 담백한 수묵화의 다양한 변주가 있는 그림이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36호 / 2018년 4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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