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의 고승으로 혜능을 만나기 전에 이미 부처의 선근을 선천적으로 갖고 있던 그는 혜능을 보자마자 혜능이 앉은 자리를 세 바퀴 돌고 주장자로 바닥을 내리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 자리에서 무생법(無生法)에 대한 짧은 법거량을 통해 세 번의 인가를 받은 영가는 후학자로서의 예를 갖추고 뒤돌아섰다. 이때 혜능이 하룻밤 묵고 갈 것을 권하자, 마지못해 그 말을 따라 조계산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붙여진 별칭이 일숙각(一宿覺) 이다.
이처럼 혜능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그는 조계를 떠나면서 “조계대사를 한 번 뵙고는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노라”고 읊조렸다. 명안종사로부터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증명을 받고 출격장부로서 할 일을 마쳤으니, 그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영가는 자신의 깨달음을 정리해 ‘영가집’에 옮겼고, 그 책 속에 담겼던 267구로 이뤄진 ‘증도가’는 깨달음의 진수를 잘 밝혀 놓은 까닭에 예로부터 선종의 고전으로 널리 애송돼 왔다.
이 ‘증도가’는 수많은 선지식들에 의해 주석서가 탄생했고, 현재까지도 해설서와 번역서 출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책 ‘증도가 합주’는 ‘남명법천증도가송’ ‘영암묘공화상주증도가’ ‘범천언기증도가송’ ‘축원선사주증도가’ 등 대표적 주석서 4가지를 한 권에 모아 전체를 번역하고 주석했다. 역주자 철우 스님이 이들 4종의 주석서를 모두 완역해 원문과 함께 실음으로써 ‘증도가’가 각 선사들에 의해 어떻게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특히 각각의 주석서들이 ‘증도가’가 본래 지니고 있는 사상을 보다 명확하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주석들을 서로 비교하며 읽음으로써 ‘증도가’가 지니고 있는 선사상, 나아가 저자 영가 현각의 사상을 한층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증도가’의 선사상 가운데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제들을 모아 ‘불성과 돈오’ ‘수증론’, 그리고 구도의 길에 있어서의 ‘경계와 질책’으로 정리해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영가 현각이 깨달음의 경계를 시 형식으로 노래한 ‘증도가’의 내용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안내서라 할 수 있다. 2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37호 / 2018년 4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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