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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밧다 ③

기자명 김규보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밧다는 산과 들을 구름처럼 떠돌았다. 아침에 눈을 떠 이 마을 저 마을 둘러보다 어스름 내릴 무렵엔 아무 집에 들어가 하룻밤을 청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원하는 무엇이든 거머쥐며 살았던 지난날이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지워졌다. 머릿속만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편에게 살해당할 뻔했던 순간과 살기 위해 그런 남편을 죽였던 순간의 충격이 그간 욕망을 순식간에 뽑아 버렸다.

산과 들 떠돌다 승원 입소
머리깍고 음식 섭취도 줄여
고통원인 찾아 세상 헤매다
사위성에서 사리붓다 만나

한동안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랑했다. 갑작스럽게 닥친 비극의 원인이 자신의 욕망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하나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 상태는 지속되지 못했다. 마을과 마을 사이 산길을 걷다 텅 빈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미궁을 헤매는 듯했다. 떠도는 일상 속에서 먹고 마시고 자는 행위에 하나라도 더 보태고 싶은 마음도 꿈틀거렸다. 나도 모르게 또 다른 욕망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유랑을 수행으로 여겼지만, 이제부터는 홀로 생활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람들과 체계적인 수행을 해보고 싶었다. 어느 날, 근처 마을로 들어가 처음 보이는 승원에 들어갔다. 자이나교 승려가 나와 밧다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어떤 연유로 이곳에 왔습니까.”
“남편을 죽이고 산과 들을 헤매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곳에서 무엇을 찾습니까.”
“고통의 원인을 알고 싶습니다.”

머리카락을 깎고 사람들과 섞여 수행을 했다. 밧다는 이곳에서 고행에 고행을 거듭했다. 음식 섭취를 줄여 몸이 바싹 말라갔고, 미생물조차 죽이지 말라는 교리에 따라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을 혹사시키는 만큼, 과거 생으로부터 쌓아온 더러운 업을 덜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하고 공부하며 교리를 습득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원에서 가장 존경받는 승려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 가운데 밧다를 가장 앞자리에 서게 했다.

“밧다는 업을 털어냈으니 천상으로 올라갈 준비가 되었다. 여기서 더 배울 것이 없다.”

승원 내 모든 시선이 밧다에게 집중되었다. 환호하며 밧다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밧다의 표정은 침울했다. 스승의 말이 맞다면, 악한 업이 모두 사라지고 윤회의 고리는 끊어졌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신이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는 말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다. 욕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행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모질게 몰아붙였지만, 답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렇게 스스로 혹사시키면 업이 사라진다 하여 그대로 실천했어도 의문은 여전했다. 스승의 말처럼 이곳에서 더는 배울 것이 없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밧다는 다시 산과 들로 나갔다. 유명하다는 스승들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그들을 붙잡고 진리에 대해 논박을 벌였다. 누구도 밧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밧다는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의문을 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점점 희미해졌다.

사위성 성 입구로 가서 모래를 긁어모았다. 그런 뒤 나뭇가지를 들어 모래더미 위에 꽂았다. 웅성거리며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밧다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나와 논쟁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이 나뭇가지를 짓밟으라.”

밧다는 아침저녁으로 나뭇가지를 확인한 뒤 처소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항상 그랬던 것처럼 성 입구로 나간 밧다의 눈에 쓰러진 나뭇가지가 보였다. 놀란 밧다가 주변을 서성이던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떤 장로가 자초지종을 물어보더니 이 나뭇가지를 밟도록 했어요.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사리붓다라고 했어요.”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37호 / 2018년 4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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