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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르테미스와 아발로키테슈바라

기자명 주수완

스무 개 젖가슴과 천개 손으로 표현된 동서양 자비 대명사

▲ 1. 로마 바티칸 미술관 소장 아르테미스 여신상. 기원전 4세기경 원본의 로마시대 복제품. 2. 일본 고후쿠지(興福寺) 십일면천수관음입상. 가마쿠라 시대. 높이 520.5㎝.

로마시내 답사를 접고 다시금 거대한 보물창고 바티칸 미술관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 소개할 작품은 그리스의 여신 도상 중에서 풍요의 여신으로 알려진 아르테미스(Artemis) 석상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디아나(Diana)로도 불리는 아르테미스는 사냥, 숲, 들짐승들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풍요의 신이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 속에 본격 등장하기 전에는 아마도 지금의 터키 인근, 특히 신약성서 중의 ‘에베소서’에서 바울의 편지가 대상으로 했던 도시 에페소스(Ephesos)가 이 아르테미스 신앙으로 유명했고, 실제 여러 개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 또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이 직접 이곳 아르테미스 신전 한곳에서 우상숭배를 하지 말 것을 설교했다는 내용도 보인다.

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
많은 수의 젖가슴 의미는
인간의 소원 무한대 수용

관세음보살 천수천안도
고통받는 중생 빠짐없이
구제하겠다는 의지 표현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가
날카로운 창 들고 있는 건
문수보살의 지혜 상징인
칼을 든 것과 유사한 의미

동양과 서양의 차이에도
보살과 여신 비슷한 상징

그런데 그리스 신화 속의 일반적인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습과 달리 이곳 에페소스에서 숭배되었던 원초적인 풍요의 여신으로서의 아르테미스는 수많은 젖가슴을 달고 있었다. 바티칸 미술관의 이 여신상은 비록 로마 시대에 복각한 것이긴 하지만 그리스 신화 이전 에페소스에서 유행했던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모델로 한 것이어서 그 원형을 엿볼 수 있다. 언뜻 다소 기괴하기도 한 이런 여신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원시종교에 있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바람인 풍요와 다산은 신이 들어주어야할 중요한 소망이었다. 흔히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 불리는 구석기 시대의 원시조각은 유난히 가슴과 골반이 강조되었는데, 풍만한 가슴은 풍요, 넓은 골반은 다산을 상징했다. 풍요와 다산은 서로 맞물린 개념으로서 풍요로워야 다산을 할 수 있고, 다산 후에도 풍요로워야 이들 생명이 성장할 수 있었다.

여하간 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서는 다만 풍만한 크기로서 강조되었던 가슴이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에 이르러서는 수적으로 강조되었으니 언뜻 풍요를 강조한 것은 비슷하면서도 그 방식이 다르다. 일종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아마도 ‘동시성’의 개념으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즉, 가슴이 아무리 풍만하더라도 둘 밖에 없으면 젖을 물릴 수 있는 생명은 둘 뿐이다. 젖을 물려야할 생명이 많지 않다면 둘이면 충분하고, 혹은 그래도 부족하다면 순서를 정해 물리면 되겠지만, 개나 고양이를 보면 새끼가 많다보니 둘로는 부족하다. 아마 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을 때는 상관없었겠지만, 점차 워낙에 많은 사람이 소원을 말하고 기원하다보니 더 많은 가슴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신씩이나 된 분이 소원을 비는 숭배자들을 줄서게 하고 순서대로 소원을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동시에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이처럼 여러 개의 젖가슴이 생겨났다.

이 동시성의 문제는 종교적으로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만약 신마저도 인간이나 동물을 줄 세우기 시작한다면, 그 순서는 어떻게 정해질 것인가? 동물들은 비록 많은 젖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새끼의 숫자가 더 많을 경우에는 새끼들 가운데 힘센 놈들이 우선적으로 젖을 빠는 서열이 정해진다. 만약 그대로 신에게 이것이 적용된다면 인간들은 먼저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 서열을 정해야할 것이고, 그 서열이 어떤 항목을 기준으로 정해지든 간에 또다시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신들은 한 번에 하나씩 소원을 들어주는 신에서 동시에 여러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신으로 진화했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는 바로 그런 진화의 산물이다.

▲ 3. 로마 바티칸 미술관의 창과 방패를 든 아테나 여신상. 4. 티베트 서장박물관의 칼과 활을 든 문수보살좌상.

비록 젖가슴의 숫자는 스무 개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사실 무한한 젖가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데 제한이 있기 때문에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많은 생명이 동시에 젖을 원하더라도 아르테미스는 문제없이 이들을 키워낼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다. 이렇듯 조금 기괴한 모습이긴 하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생명을 기다리게 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그리고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응대할 수 있는 신이란 점에서 매우 공정하고 자비로운 성격을 강조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처럼 동시적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는 불교에서도 매우 흡사하게 표현되고 있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많은 젖가슴이 있는 것처럼 많은 머리와 많은 팔을 가진 천수관음보살이 바로 그런 예에 해당한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많은 젖가슴과 함께 온몸에 동물들이 가득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숲속의 생명들을 양육하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반면, 관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는 팔이 천개나 달려있어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내밀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의 ‘천 개’ 역시 단지 숫자 1000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음을 의미한다. 이 모습 역시 무척이나 기괴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도 빈손으로는 그냥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관음보살의 중생을 향한 자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에 덧붙여 천개의 얼굴은 관음보살의 적극성을 드러낸다. 즉 찾아오는 중생들의 소원만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물색하고 찾아내 다가서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말하자면 중생을 찾는 레이더로 빈틈없이 사방을 수색하고 계신 셈이다.

동서양이 만나는 아니, 어쩌면 동서양이 갈라져 나온 근원의 땅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성장한 아르테미스 여신은 직접적으로는 서쪽으로 건너가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냥의 여신이라는 즉 생명양육과는 상반되는 여신으로 변화했지만 그 본질적인 성격은 오히려 동쪽으로 건너와 아르테미스 대신 아발로키테슈바라, 즉 관음보살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다. 그래서 바티칸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보고 있으면 왠지 동아시아의 천수관음상이 떠오르게 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통일신라 말 최은함이란 사람이 경주 중생사의 천수관음상 앞에 나아가 자식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하여 아기를 얻게 되었다. 후에 후백제 견훤이 경주에 쳐들어왔을 때 이 관음상이 자신의 아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어 맡겨 놓고 떠났다 난리가 끝나고 와보니 아이의 입에서 젖 냄새가 날 정도로 건강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 관음이 아이를 낳게 하고 길러 주었으니 풍요와 다산의 관음이었던 셈이다. 수많은 젖가슴을 가진 바티칸의 아르테미스를 보고 있자니 중생사의 천수관음이 최은함의 아들에게 젖을 물렸을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 서울 흥천사 극락보전에 봉안돼 있는 천수관음상(42수관음상). 고려말~조선초.

한편 바티칸 박물관에는 이밖에도 훌륭한 아테나(Athena) 여신 조각상도 여러 점 전시되어 있다. 아테나 여신은 지혜와 전쟁, 그리고 문명 등을 상징하는데, 흔히 창과 방패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로마 시대에는 미네르바로 불렸는데, 이때도 지혜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원래 들고 있던 긴 창은 부서진 것이 많지만, 높이 든 손에는 창이 쥐어져 있었다. 왜 지혜의 여신이 동시에 전쟁의 여신을 겸하고 있었는지는 복잡한 사연이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원래는 지혜의 여신으로서의 상징이 창과 방패였는데, 그것이 점차 전쟁의 상징으로도 간주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속담에서는 무력의 상징인 칼과 지혜의 상징인 펜을 대비한 것이지만, 원래는 날카로움을 상징하는 칼이나 창이 곧 지혜를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무엇을 자른다는 것은 사리분별을 의미했고, 찌른다는 것은 곧 예리함을 뜻했기 때문이다.

언뜻 한없이 여성스러운 존재가 창과 방패를 들고 투구를 쓴 모습은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런 모습은 보살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문수보살이 그렇다. 문수보살은 미륵보살과 관음보살 신앙에 이어 유행했던 보살로서 주로 화엄경의 상징적 존재로서 부각되었다. 대체로 사자를 타고 있는 존재로 묘사되다가 특히 밀교에 이르러서는 칼을 든 존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문수보살 역시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묘사되는 점이 흥미롭다. 문수보살의 대표적인 지물인 칼이 곧 문수의 지혜를 상징하는 셈이니 아테나의 창과 서로 유사한 맥락을 지닌 셈이다. 우아하게 앉아 칼을 휘두르는 문수보살은 다소 생소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 아테나 여신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현란한 지혜의 또 다른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서방의 미네르바는 동방에 건너와 만쥬스리(문수보살)가 되었던 것일까?

불교의 보살상은 흔히 여성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것이 꼭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듯 각각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보살과 여신이 서로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두 가지로 설명의 가닥을 잡아볼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교류했거나, 아니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같은 인간이기에 결국은 서로 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 말이다.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37호 / 2018년 4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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