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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고려대장경 영인 고불식

기자명 이병두

40년전 영인본 구하기도 어려운 처지

▲ 1976년 6월10일 봉행된 고려대장경 영인본 완간 고불식.

흔히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이라 부르는 해인사 보관 대장경은, 그 보다 앞서 대구 부인사에서 판각‧봉안했다가 몽골군 침입 때에 불탄 초조대장경과 구별하여 ‘고려재조대장경(高麗再雕大藏經)’이라 불러야 정확하다. 그러나 이미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국제학계에서도 ‘Tripitaka Koreana,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 이하 고려장)’으로 통용되고 있다.

가장 완벽하다는 고려대장경
‘찬란한 과거 유물’로만 존재
활용방안은 여전히 큰 과제

이 ‘고려장’은 불보살(佛菩薩)의 가피로 몽골의 침입을 막아내고자 1236~1251년 15년 만에 완성한 것으로,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 가치가 인정되어 1962년 12월 국보 제32호로, 2007년도에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받았다.

이렇게 완벽한 대장경 판각은 단순하게 글자를 나무 판에 새기는 기능적인 일이 아니었다. 당시 동아시아 세계에 통용되고 있던 모든 대장경 자료를 수집해 대조하며 오류를 바로잡고 원본을 채택해 전체 경판을 똑같은 글씨체로 써서 나무에 새기는 일은, ‘13세기 아시아 문화콘텐츠의 총 집합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래로는 이 소중한 콘텐츠인 고려대장경이 대접을 받지 못했다. 조선 초기에는 끊임없이 “경판을 보내 달라”는 일본의 요구에 “차라리 주어버리자”는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을 정도였다. 다행히 경판을 넘겨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간곡한 요청과 협박(?)에 경판을 한지에 찍어 보내주었고 일본은 20세기에 들어와 이를 바탕으로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이하 대정장)’을 새로 편찬하였다.

오늘날 한역(漢譯) 경전을 활용할 때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불교학자들이 이 ‘대정장’을 이용하게 되면서 이제 ‘고려장’은 학자들에게서도 외면당하며 ‘찬란한 과거 역사 유물’로만 존재하게 되었으니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족 해방 이후 혼란의 와중에서도 일반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한글화 원력을 세운 선각자들 덕분에 동국역경원을 설립하고 힘들게 그 작업을 이어왔지만 이 사업에서도 작업의 편리성 때문에 ‘고려장’이 아니라 ‘대정장’을 기본 텍스트로 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통합 조계종단 출범과 역경원 설립 십수년이 지난 1967년에야 이 ‘고려장’의 영인 완간을 부처님께 아뢰는 고불식을 가졌다는 사실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이처럼 무겁고 무서운 것이다. 입으로 “세계 최고(最古), 가장 완벽한 대장경”이라고 숱하게 말을 하면서도 그 보물을 세상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로 제공하는 일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던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안타까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전산화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학자들이 ‘고려장’을 활용해 논문을 쓸 가능성은 희박하고 국내에서는 40년 전에 이루어진 영인본조차도 구하기 어렵게 됐으니 우리가 1976년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다고 하면 심하다고 할까? 다행히 중국 어느 절에서 이것을 축소 영인해 고급 장정본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37호 / 2018년 4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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